비교와 행복 강박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 더 넓은 마음으로는 나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좁은 케이지와 울타리에 갇혀 살지 않을 동물 복지를 이야기하고, 닭과 돼지도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행복이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상태이고 목표가 된다. 그런데, 정말 행복해야 할까?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행복이 남들보다 더 많은 연봉, 남들보다 더 큰 집,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패션, 부담 없이 떠나는 럭셔리 여행 같은 '비교'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에서, 성인들의 말씀을 옮긴 책에서,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은 분들의 말에서 행복은 자기 안에서 나온다고 배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배운 것일 뿐 실상 행복은 '남들보다 나은 그 무엇인가'에서 느낀다. 그래서 우리에게 행복이 반대말은 불행이다. SNS 올라온 온갖 사진들을 보며 비교불행에 빠진다. 나만 뱃살이 늘어난 것 같고, 나만 눈가 주름이 많아졌다. 나만 저곳에 가보지 못했고, 나만 저 신상 가방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저 행복한 모습과 미소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나는 불행하다.
물질이 질서를 만들고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인지라, 교과서 시조에서 배운 안빈낙도, 안분지족 하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안빈낙도와 안분지족은 '정신승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안빈낙도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이란 뜻이고, 안분지족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죽을 앎'이란 뜻이란다. 가지지 못했으니 고고한 척, 없어도 되는 척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척'도 하기 힘들다. 수많은 자기 성찰과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수준의 정신승리다.
그러면,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꼭 행복해야 할까?
행복의 반대쪽에 불행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난하고 아무 탈도 없이, 행복이나 불행의 느낌 없이 사는 날과 삶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 행복해.'라고 느껴야만 하느냐 이 말이다. 어제와 같은 날이니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늦은 시간에 허둥거린다. 머리 감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내 정수리 냄새를 맡을 일이 없을 테니 '하루쯤'하며 건너뛴다. 늘 먹던 백반으로 점심을 먹고 식당 근처 메가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한잔 마신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별다른 약속이 없어 일찍 귀가한다. 티브이를 볼 수도 있고, 밀린 드라마 몰아보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든다. 하루가 별 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이렇게 지나간 하루에 몸짱이 되기 위해 운동을 하고, 건강즙과 비타민을 챙겨 먹으며 또 한 번 유병장수하는 삶을 위한 작은 기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플로언서가 다니는 피트니스센터여서가 아니라, 회사 옆자리 사람이 먹는 건강보조식품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필요에 의한 루틴이면 무방하다.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왠지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다. 소소한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고 반복되는 일인데, 거기서 행복이라는 억지 감정을 끌어내야만, 우리는 행복해지는 걸까? 소소하고 무탈한 하루, 주변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고마워해야 하고 감사하고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걸 자꾸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안빈낙도와 안분지족을 실행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이른 극소수의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도'와 '깨달음'에 도달한 셈이다. 모든 사람이 깨달음과 도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러니, '행복해야 한다고' 타인의 시선과 기준으로 행복을 강조하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도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행복해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광고 속에서 접하는 소소한 일상은 실은 전혀 소소하지 않다. 우리 집 전체 평수보다 넓어 보이는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거실에서 내 침대보다 훨씬 더 큰 소파에 앉아 출근전쟁 따위는 없이 풀 메이크업으로 커피를 마신다. 8인용은 되어 보이는 식탁, 광활한 아일랜드 주방에서 물 한 방울, 기름 한 방울 튀지 않고 요리를 하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즐기는 커피나 oo을 보여준다. 전혀 소소하지 않은 모습을 소소하다고 세뇌시키며 저 소소한 것조차 가지지 못한 우리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든다. 비교하고 강요함으로써 비교와 물질, 소비를 행복이라고 포장하고, 이를 통항 행복을 찾고 느끼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행복이 물질과 비교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에게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일상과 나의 주변사람들. 그들과 행복함을 굳이 느끼지 않는 무난한 상태와 감정을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 행복을 세뇌시키고 강박관념에 가까운 삶의 목표로 만들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우리는 '강요된 행복'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