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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다. 그래도 살아가자.

태어난 김에...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남의 돈을 벌어먹고살기는 힘들다.'


직업이란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재능과 능력에 따라 업에 종사하며, 정신적·육체적 에너지의 소모에 따른 대가로서 경제적 급부를 받아 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활동양식이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고 그에 맞는 일정한 대가를 받는 노동 시장은 등가의 법칙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다. 주는 사람은 하는 것에 비해 많이 받아 간다고 생각하고, 받는 사람은 하는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소위 '동상이몽'인 셈이다.



아무리 직업이 자기 계발과 자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라고 교과서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의식주라는 욕구의 1단계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동상이몽에서 오는 괴리감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거기에,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의 경우는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와 괴리감을 가져다준다. 회사와 조직에 인생과 감정을 통째로 갈아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월급쟁이의 자화상이다. MZ로 상징되는 지금 세대들의 '내가 왜요?'라는 표현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인생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 하는 불편하고 잘못된 관행을 없애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상하관계와 조직의 논리에 승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왔던 아재 세대의 비겁한 희망사항이다.



노동으로 사회적, 경제적 신분을 벗어나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란 점점 어려줘지고 있다. 대다수의 직업은 연봉만으로는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N잡러의 시대를 사는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자 강요가 되고 있다. 파이어족이 되고 파이어드가 되는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난하고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N잡러를 살아야 하는 셈이다. 화폐의 액면상의 가치는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누군가에게 10억은 내 지갑 속 만원의 소비와 같을 수 있다.



줄퇴근을 위해 하루 24시간 중 대략 3~4시간을 '이동하는 길바닥에 버려야 하는 사람'도 많다. '9 to 6'로 상징되는 퇴근 후의 삶, 저녁이 있는 삶이란 문구는 그저 광고 속에서나 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남의 돈을 벌어먹고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 안에 삶과 행복이 있다고 세상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다'가 아니라 '살아내다'라는 표현이 이젠 일상화되었다. 국립 국어원 홈페이지에 살아가다와 살아내다의 의미차이를 묻는 질문에 국어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목숨을 이어 가거나 생활을 해 나가다/어떤 종류의 인생이나 생애, 시대 따위를 견디며 생활해 나가다'를 의미하는 '살아가다'는 '살아 내다'와 의미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표현 의도에 따라 두 표현이 비슷한 맥락에 쓰일 수는 있으나, 동일한 의미는 아니므로 표현 의도에 맞게 쓰시길 권합니다. 아울러, '살아 내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스스로의 힘으로 끝내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말'을 의미하는 보조 동사 '내다'가 쓰인 구성으로 주로 그 행동이 힘든 과정임을 보일 때 쓰인다는 점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85247





태어난 김에 살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태어난 김에 살아내는 것보단, 태어난 김에 살아보자. 그래, 살아내는 것이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면 어떤가. 국어원이 말하는 것처럼 '그 행동이 힘든 과정'임에도 주저앉거나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책임지고 있는 모습이 살아내는 것이니까. 취미가 밥벌이가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고 한다.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감흥을 느끼어 마음을 당기는 멋'이라고 정의한다. 즐기고, 흥을 느껴 마음이 당기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재미있는 일도 직업이 되고 생계가 걸리면 치열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공자께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다고 하셨다. 지금 순간이 힘들고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는 이만한 개소리가 없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즐기는 삶, 나와 내 주변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어야만 행복해진다. 그래야 돈 버는 기계, 남의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말에서 작은 한 발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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