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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하지 않을 자유

옛날 이야기가 아닌 내일을 말하는 사이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사람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움도 느낀다. 하지만,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이 분명 불편할 때가 있다. 적당히 입에 발린 안부 인사와 의례적인 칭찬을 주고받아야 하는 정도인 관계 속에 들어가 있으면 금세 말할 소재가 떨어지고, '예전에~'라고 말하며 기억 속에 좋았던, 혹은 좋았다고 기억되어 있는 이야기를 만날 때 마다 '다시 돌리고 돌려야'만 한다. 특히, 시간대 맞추기가 어려운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여유로울 때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만남을 종용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무례'한 일이 된다. 그래서, 한 두 번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다 그냥 주머니에 집어넣기 시작하면 연락할 용기가 점차 사라진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엄청 좋아한다.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왜 연락 안 하냐고?'라고 묻지 않는다. 답은 뻔하니까. 내가 일할 때 너희들은 모이고, 내가 여유로워지면 너희는 집에 가거나 잠을 잘 테니까. 그런데, 실은 '왜 연락 안 하냐?'란 말은 굉장히 오만한 말이다. 왜 연락은 내가 해야 하지? 그렇게 물어보는 너는 '그동안 연락 한번 안 하지 않았니?' 말을 곡해하면 나는 '연락을 드려야 하는 사람'이고, 너는 '그 연락을 받아주는 사람'이란 뜻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연락할 것을 강요할 수 없듯이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하라는 강요를 받을 이유가 없다. 사람 사이에 좋고 싫음을 떠나 연락하지 않을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묻기 전에 내가 그 누군가에게 연락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언제 한번 봐야지라는 말보다 그 언제를 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왜 연락 한번 없냐는 푸념을 서로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된다. 언제 한번 봐야지라는 인사는 '다시 볼 일이 없겠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의미한 말보다 차라리 연락하지 않을 자유를 허락하는 사이가 더 편하고 만나면 즐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만날 때마다 똑같은 과거사를 들먹이지 않고, 서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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