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른 거리
친구(親舊). 친할 친과 볼견이 합쳐서 '가까이에서 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옛 구를 쓴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라고 읽고,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에서 풀이한다.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보며 친하게 지낸 사람. 듣기만 해도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다. 슬며시 옛 기억이 떠오르며, 모두를 일순간에 '라떼'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는 단어다.
그리고, 친구와 관련된 좋은 말들이 많다.
친구는 멀리하고 적은 가까이 둬라.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친구와 술을 묵을수록 좋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친구가 일가보다 낫다.
그중에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는 말은 사람 사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부담을 주는 말이다. 계산 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통하는 대로' 친구가 되던 시절에는 친구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의 부담을 몰랐고, 어쩌면 그때는 친구란 말 자체에 큰 의미가 없었다. 누군가와 특별히 친함의 농도 차이로 친구와 친구가 아닌 사이로 나누는 법을 몰랐고, 모두가 처음 봐도 즐겁고 스스럼없이 웃고 가진 것을 나누던 시절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질문이 점점 바뀌어 간다. '저 중에 누구랑 친해?', 'oo 이는 친구가 누구야?' 당연히, 같은 교실, 같은 강의실, 같은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이지만, 친구인 사람과 친구가 아닌 사람으로 나뉘기 시작한다. 듣기 좋게 지인, 아는 사람이라고 쓰지만, 냉정하게는 별 의미가 없거나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냉정한 말이 되기도 한다.
연락을 자주, 꾸준히 하고 모임을 잘 만들고, 모임에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 정치적, 경제적 필요가 아닌 사람이 좋아서 사람을 찾고, 모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친구가 많다. 전화 몇 통이면, 모임톡에 간단한 알림 하나 올리면 금세 밥 먹고, 술 마실 사람. 영화볼 사람, 여행 갈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핵 인싸'다. 사람들은 고민을 털어놓고, 그 사람의 안색과 눈빛이 바뀌면 무슨 일 있냐는 걱정과 위로의 소리를 듣는다. 당연히 'oo 씨, 사회생활 잘했네.' 혹은 'oo 이는 성격이 좋아서 친구가 많아.'라는 칭찬이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핵인싸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냉정하거나 계산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수줍음이 많고 혼자 있는 것에 큰 불편함이 없을 뿐이다. 자기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돕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단지,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밀고 친해지는 과정을 수행할 에너지가 적을 뿐이다. 그것보다 다른 무엇인가에 삶의 의미를 두고, 그 의미와 목표를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을 너무 쉽게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지칭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어두운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친구는 분명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친구는 적을 수도 있다. 나이 들어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셋만 된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친구를 많이 만들고 넓은 사교생활의 범위를 가지지 못한 것이 인생과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은 각자 타인에게 허용할 수 있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와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다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취향 존중의 시대라면, 친구가 적을 수 있다는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