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노을 풍경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며 얼굴을 붉히던 그 해 질 녘. 엄마의 부엌에서는 서두르는 달그락 소리가 났다. 동네 누군가의 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날아올랐다. 그러다 멀리멀리 그리고 높이 꼬리가 작아지다가 아련하게 떠나갔다. 가끔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서 하얀 연기가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있는 날에는 연기도 굴뚝에서 나와 춤을 추다 이내 흩어져갔다.
뜨거운 태양빛도 힘을 빼고 선선한 공기로 땀을 식혀줬다. 산자락에 넘어가는 해는 붉고 노오란 노을을 선물로 남기던 해 질 녘. 난 그 시간을 좋아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그윽한 느낌이 좋았다.
저녁 상을 차리기 전에 급히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몇 번을 더 이름이 불려지고 나서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집으로 돌리곤 했으니까. 가끔은 엄마의 손에 손목을 잡히기도 했지 않았을까? 집으로 가지 않는 친구 엄마는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오시기도 했다. 우리는 무서워서 덩달아 달음박질하여 집으로 뛰어들었다. 그 골목에 다시 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 질 녘은 언제나 아쉬움과 그리움, 아련함을 남긴다. 헤어짐의 시간이자 다음을 기약하며
가슴에 묻는 추억을 모으는 공간이기도 하다. 미련을 가득 안은 채로.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 꺼내보고 싶은 앨범처럼.
나는 사춘기를 지날 때도 해 질 녘은 알 수 없는 방황을 몰고 왔다. 해가 떨어질 무렵의 그 시간을 잘 넘겨야만 했다. 온갖 번민과 생각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때도 있었기에. 운이 좋으면 해가 지는 들녘으로 산책을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여학교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할 때도 노을빛이 머무는 그 고비를 무사히 넘어야만 했다. 마음속에서 벌렁거리며 뛰쳐나가려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여간 쉽지 않았으니까.
시원한 초가을 해 질 녘엔 길 가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가 나를 불러냈다.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노을 아래 코스모스 길을 따라 걸었다. 하염없이.
나는 지금도 해 질 녘 노을을 보며 가만히 멈추어 선다. 카메라에 노을 풍경을 담아 보기도 하고, 입을 벌린 채 그대로 얼어버릴 때도 있다. 해가 산을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이는 세상을 천천히 맞이하길 바라면서.
지금은 운이 좋게도 시골 들판과 굽이굽이 산등성이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매일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면서. 이 호사를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이 순간에 감사하기로 하자. 비록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조용한 시골에서 보내는 이 시절을 언젠가 그리워할 테니까.
해 질 녘 바람을 따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채비를 한다. 목소리에 응답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