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다짐하는 약속
살면서 종종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은 꽤나 의미가 있다. 그곳은 여러 교훈을 얻게 되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더 그런 생각이 든다.
1월의 추운 겨울 주말, 사랑하는 달샘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 결혼식도 아닌데 눈물을 쏟고 왔다. 애절하면서 감동이 있는 진정한 결혼 예식이었다. 신랑 신부의 두 눈도 눈물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예식 도중에 화장을 여러 번 고쳐야만 할 정도였다. 이토록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결혼식에 초대받아 마음을 다해 축하할 수 있어 감사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매 잠들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 21~24)'
주례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남자가 잠이 깊이 들었다가 깨어났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아내를 얻었다는 의미라는 것을.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도 사랑하기로 약속한다는 것을. 좋을 때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순간도 함께 믿음으로 이겨나가기로 약속한다는 그 의미를 다시 기억한다.
하얀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난생처음으로 안경을 벗고 신부화장을 하던 그날.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서약을 했다. 미처 그 약속이 얼마나 무겁고 중한 것인지를 깨닫지도 못한 채로.
달달하고 행복한 신혼은 잠시 지나가고. 서로의 다름으로 부딪히기 시작했을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 된 것만 같았다. 나뿐이었겠는가? 남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쯤 해서 정리하고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고비고비를 넘어왔다. 면사포를 두르고 흰색 장갑을 낀 채로 벅찬 가슴으로 서 있던 그 여인은. 목사님의 서약에 단단히 마음먹고 담담하게 대답했던 나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잊힌 채로 휘청거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다시 22년 전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 앞에 다시 서 본다. 그날의 그 약속을 다시 붙잡으면서.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한 그 중요한 서약을 마음에 새긴다.
흔들리더라도 넘어지지 말고, 요동치더라도 마음을 지키기로, 야속하고 밉더라도 품어 주기로, 나 자신에게 힘찬 응원과 함께 약속을 안겨 준다.
내가 그의 갈빗대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던가? 내가 그에게 속했고, 그는 나에게 속하지 않았던가? 오래전 우리 둘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로 작정하고 결심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남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그는 살며시 내 손을 잡아 버스가 멈출 때까지 놓지 않았다. 겨울에 어지간해서는 따뜻해지지 않는 내 차가운 손에 온기가 남았다.
버스가 멈추기 전 남편이 놀란 듯 말했다.
"어, 손이 따뜻해졌네?"
나는 미소만 가만히 지으며 내 손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