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일이 생기더라도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이런 마음 가짐이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
- 내일이 두려운 오늘의 너에게 책 내용 중에서 -
우리 집 네 가족 밥그릇 크기는 각기 다르다.
남편 밥그릇은 일반적인 국그릇을 밥그릇으로 사용한다.
일반 밥공기에 남편이 밥을 담으면 매번 모자라 두세 번 밥을 더 주는 번거로움을 없애고자 남편 밥그릇은 국그릇과 똑같은 크기의 밥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 딸아이의 밥그릇은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아내는 종기 사이즈보다 약간 큰 정도의 밥공기를 사용한다.
둘째 아들의 밥공기는 나와 같은 일반 밥공기를 사용한다.
한 가족이지만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밥의 양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각자 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
딸아이가 맛있는 반찬 앞에서 평소의 자기의 밥양 보다 많이 먹은 날은 배탈이 나고 그날 저녁 먹은 모든 것을 토해 낸다.
매번 같은 양의 밥을 먹다가 갑자기 두배의 밥의 양이 들어오니 딸아이의 위장이 놀라서 탈이 났던 것이다.
"적당히 먹어야지 니 밥그릇 양만큼만 먹어!"
엄마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매번 달리기에서 꼴찌를 하고 울먹이던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각자 다른 그릇의 크기를 가지고 태어나!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의 그릇,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그릇,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의 그릇, 글을 잘 쓰는 사람의 그릇,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의 그릇 저마다 그릇의 종류도 크기도 다르다고 한다.
너는 글을 잘 쓰는 그릇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달리기를 못한다고 울고 있거나 속상해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엄마의 말은 이해할 수도 없었고 맨날 달리기에 꼴찌 하는 속상한 마음도 사라지지 않았다.
뭐든지 잘하고 싶었던 욕심 많은 초등학생 딸에게 엄마는 나의 그릇을 찾아 그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적당한 양을 채우면서 살아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짜증내고 속상해한다고 나의 달리기 실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꽝이었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이 꼴찌였다.
턱걸이, 윗몸일으키기, 뜀틀 뛰기, 멀리뛰기, 제자리 뛰기 등등 학창 시절에 배운 체육에 관련된 모든 것에 나는 꼴찌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서 체육이라는 과목은 나에게 공포의 과목이 되기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철봉에서 턱걸이 연습을 하고 멀리뛰기 연습을 수없이 했지만 눈에 띄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체육 실기는 최하위점 체육 필기는 100점을 맞아 가까스로 중간 점수를 유지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에 끝까지 꾸역꾸역 내 그릇에 채우려고 했던 어리석음에 정작 내 그릇에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은 점점 사라져 갔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밥을 먹고 탈이 났던 딸아이, 운동신경 꽝인 내가 달리기라는 재능에 집착했던 나의 어린 시절 모두 나의 그릇의 크기 보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던 욕심에 탈이 나고 기존의 나의 재능까지 사라지게 만들었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기대를 하게 되고, 가지고 싶어 지는 욕심을 쉽게 멈출 수가 없다.
"누구누구가 경매로 아파트 3채를 낙찰받아서 1억이 넘는 돈을 벌었대!"
"누구누구가 상가를 구매해서 월세로 200만 원을 받는데!"
내 것이 아닌 것에 나는 또 나의 그릇에 꾸역꾸역 자리를 만들어 넣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내가 왜 못해?라는 자만심에 가득 차서 또다시 경매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다.
남편의 밥그릇이 부럽다고 그 밥그릇에 밥을 담아 먹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밥을 양은 정해져 있기에 남편만큼의 밥을 먹으면 체하거나 배탈이 난다.
내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담기 전에 알아 채린 다면 배탈이나 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의 그릇을 탐한 것에 대한 대가는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나의 지인들의 좋은 소식을 들을 때면 입으로는 "축하해! 좋겠다! 부럽다!"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나라고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없으란 법도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이 생겨난다.
내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욕심을 부리고 신경을 쓰고 애써서 가지려고 한다.
애쓰고 노력해서 가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내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은 나에게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달리기 1등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나의 그릇에 더 좋은 것을 담고 싶으면 나의 그릇이 좋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식사를 하기 위해 담아내는 그릇에도 각기 담기는 음식이 다르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사람이 먹던 밥그릇이 낡고 볼품없어지면 그 그릇에 개밥을 담아 주곤 했다.
어떤 음식이 담기느냐에 따라 밥그릇의 가치는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한다.
"네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은 타고나는 거야"
욕심 많았던 나는 엄마의 말을 부정했다.
노력으로 충분히 그 그릇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력으로 나의 그릇을 바꿔 내가 원하는 것을 담아낸다고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 되지는 않는다.
세상의 이치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그릇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담으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고 싶다.
내 그릇에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둘 비우고 내 그릇에 담겨야 할 것들을 하나둘 채우면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