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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r 26. 2020

여기 개나리가 있었네!

2년 전 덕소(德沼 )라는 정감 있는 이름을 가진 동네로 이사 온 일은, 주어진 삶이 아닌, 몇 안 되는 선택한 삶에 해당된다. 스스로 선택한 일은 설사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시 나아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하물며 선택한 일이 좋은 결과로까지 이어진다면? 25년을 부산에 살다가 딱 50살이 된 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 듯 이틀 고민하고 이사 온 덕소에서의 삶이 그렇다. 살아보니 꼭 이런 기분이다. 길가다 충동구매한 물건을 집에 와 써보니 기대 이상으로 알지고 괜찮아서 매우 만족!


어떻게 나이 들어하는 이사를 감히 충동구매에 비유할까마는 그때 기분이 그랬다. 깊이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하기보다는 다들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일부러도 가는 00살이에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거기다 이사 갈 이유도 반쯤 있는데 나이랑 익숙함에 잡혀 못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이 나이기 때문에 떠나고 싶기도 했다. 지금 아니면 익숙함을 벗어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 이사를 가느냐 마느냐가 문제였지 일단 정해지면 몸은 고돼도 마음은 쉽다.


덕소는 아주 큰 소(沼)라는 지명답게 10분만 걸으면 인근에서 가장 깊은 웅덩이가 있었던 한강과 ,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가까운 물의 도시다. 한강 나가는 길엔 월문천이라는 냇가도 흐르고 또 냇가는 5월이면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검대산이라는 작은 동산을 끼고 있다. 집 밖만 나가면 산책할 곳이 온데 널려있는 셈이다. 30분이면 서울 일터로 갈 수 있으면서 이런 자연환경을 갖추기가 어디 쉬울까.


두 번째 봄을 맞았고 코로나라는 괴물이 생활을 옥죄고 있지만 산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월문천을 건너 동산(검 대산)에 올랐다. 매일매일 나무 어린순들이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모두 마른 빗자루 대마냥 개성 없이 삐쭉 서 있다가 한컷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다. 천천히 걸으며 응원의 눈길을 골고루 주게 된다.

조금 숨이 찰 정도의 능선을 올랐다 내려갔다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벌써 끝자락, 아쉬워 근처 아파트 산책길을 따라 한강 쪽으로 더 걷는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짜잔~ 한강이 굽어 보이는 지점에 이른다. 확 트인 풍경에 요즘 더해진 건 지천에 핀 개나리 동산이다.

꽃들은 모여있어야 예쁘다더니 그 말이 맞다.

개나리길을 끼고 내리막 길을 내려와 집 가는 월문천으로 가지 않고, 물을 부어 죽 양을 늘이듯 산책 양을 늘이고자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강변길 둑으로 올라섰다.

어, 여기도 개나리가 있었네!

남호섭 시인의 <개나리>로 산책길 마무리~.


 개나리   

         - 남호섭 -


올해도 학교 담장을 따라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선배 언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옆을 지나치는데


올해 처음

개나리 담장을 보게 된

신입생들은

모두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습니다.


"여기 개나리가 있었네."


*타임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 창비/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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