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 2017년
<오리엔트 특급살인>(1974), <오리엔트 특급살인>(2001)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1974년 영화를 바탕으로 '고급스럽고 세련되게'를 모토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연출은 토르 1편과 신데렐라 감독을 맡았던 케네스 브래너이며, 주인공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 역으로도 출연했다. 제작은 리들리 스콧, 사이먼 킨버그 등이, 각본은 로건의 마이클 그린이 맡았다.
다음날 에르퀼 푸아로는 조금 늦게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차에 들어섰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혼자 식사를 한 다음에 런던으로 그를 불러들인 사건에 대한 기록을 훑어보며 오전을 보냈다. 같은 방을 쓰는 청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부크가 맞은편의 빈자리로 친구를 불러들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푸아로는 이 자리가 가장 좋은 음식을 가장 먼저 제공받는 특석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맛 또한 아주 훌륭했다.
달콤한 치즈 크림을 먹고 나서야 부크는 배를 채우는 것 이외의 다른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관념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배가 부른 거였다.
부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내게 발자크 같은 글재주가 있다면 이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 텐데.”
부크는 손사래를 쳤다.
“멋진 생각이로군요.”
“그렇지요? 이만한 소설은 아직 쓰인 적이 없을 겁니다. 그것은 아무 낭만적인 소설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계급과 국적과 나이가 다 다르죠.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흘 동안 함께 지내게 된 겁니다. 한 지붕 아래서 먹고 자고,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이 되면 각자의 길로 가서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게 되겠죠.”
“하지만, 만약 사고라도 나면.....”
푸아로가 말했다.
“오, 안 돼요.”
“당신에게는 유감스런 일이 되겠지만 잠시 상상이라도 해 봅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죽음이라는 연결 고리로.” (P39-40)
심플론 오리엔트 특급은 그날 저녁 8시 45분에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9시 15분에 다시 출발할 예정이었으므로, 푸아로는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바깥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너무나 추웠기 때문이었다. 플랫폼엔 천장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밖에서는 내리는 함박눈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그는 객실로 돌아왔다. 플랫폼에 서서 몸을 덥히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휘젓고 있던 차장이 푸아로에게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짐을 옮겨 놓았습니다. 부크 씨가 쓰시던 1호실입니다.”
“그러면 부크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분은 방금 연결된 아테네에서 온 객차로 옮기셨습니다.”
푸아로는 친구를 찾아갔지만, 부크는 푸아로의 항의를 가볍게 물리쳤다.
“별 거 아니에요. 정말 별 거 아닙니다. 난 이쪽이 훨씬 편해요. 당신은 영국까지 가야 하니까 칼레로 가는 객차에 있는 게 더 나아요. 난 이곳에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객차는 나와 그리스인 의사를 제외하면 텅텅 비었거든요.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죠?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폭설은 없었다고 하더군요. 발이 묶이지 않기나 바랍시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9시 15분 정각에 기차는 역에서 출발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잠시 후 푸아로는 친구에게 잘 자란 인사를 하고 일어서서 통로를 따라 식당차 바로 앞칸인 자신의 객실로 돌아왔다. (P50-51)
“‘몸을 숨길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라고 그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죠. 하지만 그분은 계속 우기셨어요. 잠에서 깨어보니 남자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렇다면 그 남자가 어떻게 문을 잠가 둔 채로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전혀 귀를 기울이시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걱정거리가 태산 같은데, 이 눈이....”
“눈이라고요?”
“예.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기차가 멈춰섰답니다. 눈사태에 갇힌 거지요. 얼마나 갇혀 있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한번은 이레 동안 갇혔던 적도 있었지요.”
“여기가 어디쯤입니까?”
“빈코브치와 브로드 중간 지점입니다.” (P58)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푸아로가 물었다.
“그렇게 묻는 것도 당연하죠. 먼저, 이 폭설입니다. 폭설 때문에 열차가 서 버렸습니다. 그리고....”
부크는 잠시 머뭇거렸다. 목이라도 조여진 듯 가쁜 숨소리가 차장에게서 새어 나왔다.
“그리고, 뭡니까?”
“그리고 승객 한 명이 칼에 찔려 죽은 채 자기 침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승객이라고요? 누구죠?”
“미국인입니다. 이름이....., 이름이.....”
부크가 앞에 놓인 쪽지를 보고는 말했다.
“라쳇이로군요, 라쳇 씨가 맞나?”
“예, 맞습니다.”
푸아로는 하얗게 질려 헐떡이며 대답하는 차장을 보았다. (P65)
부크가 푸아로를 쳐다보았다. 푸아로도 부크를 마주 쳐다보았다.
“푸아로 씨, 내가 당신에게 뭘 부탁하려는 알겠죠? 난 당신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맡아 주세요! 안 됩니다. 안 돼요, 거절하지 마세요. 이건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난 우리 회사를 대표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유고슬라비아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들에게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일이 간단해지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면 기차가 지연되고 수만 가지의 귀찮고 불편한 일이 생기겠죠. 누가 알겠어요.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게 될지! 그러니까 당신이 이 미스터리를 푸는 겁니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이 사람입니다.’라고”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요?”
“오! 친구.”
부크는 드러내놓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오, 몽 쉐르(친구여). 난 당신의 명성을 알고 있어요. 당신의 수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요. 이건 당신에게 딱 맞는 사건입니다. 사람들의 신원을 조사하고, 그들의 보우너 파이디즈(진실을 드러내는)를 얻어내는 건 시간을 잡아먹고, 한없이 귀찮은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자에 편히 기대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고 자주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하세요. 기차에 탄 승객들을 심문하고 시체를 살펴보고 단서를 조사해 봐요. 난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 말이 허풍이 아니란 걸 믿어요. 앉아서 생각해요. 당신이 자주 말했던 대로 회색 뇌세포를 사용하라고요. 그러면 범인을 찾아낼 겁니다!” (P70-71)
푸아로는 한숨을 쉬고 나서, 조그만 탁자 위에 몸을 구부리고 타다 만 종이 조각을 조사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구식의 여성용 모자 상자야.”
푸아로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콘스탄틴 의사는 이 괴상한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번 경우에도 푸아로는 질문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복도로 향한 문을 열어젖히고 차장을 불렀다.
차장은 곧 달려왔다.
“이 객차에는 여성이 몇 분이나 있습니까?”
차장이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 둘, 셋...... 여섯 분입니다. 선생님, 나이 든 미국 부인, 스웨덴 여자 분, 젊은 영국 아가씨, 안드레니 백작 부인, 드래고미로프 공작 부인, 그리고 공작 부인의 하녀가 있습니다.”
푸아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두 모자 상자를 갖고 있겠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스웨덴 여자 분과 공작 부인의 하녀가 갖고 있는 모자 상자를 가져다주십시오. 그 두 사람만이 가능성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겐 세관의 규칙이라든지, 아니면 뭐든지 생각나는 대로 둘러대고요.”
“괜찮을 겁니다. 지금은 어느 분도 객실에 계시지 않으니까요.”
“그럼 서둘러요.”
차장이 떠났다가 상자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푸아로는 하녀의 모자 상자를 열어 보고는 옆으로 밀어 두었지만 스웨덴 여자의 모자 상자를 열어 보고 나서는 만족스러운 탄성을 냈다. 조심스럽게 모자를 들어내자, 철사로 된 둥근망이 드러났다. (P92-93)
“의사 선생, 보시다시피 난 전문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사람의 심리 분석이지 지문이나 담뱃재 채취가 아니죠. 하지만 이번에는 기꺼이 약간의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이 객실은 단서로 가득 차 있지만 과연 이 단서들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푸아로 씨.”
“글쎄요...... 예를 들면, 우린 여자 손수건을 찾아냈습니다. 여자가 떨어뜨린 걸까요? 아니면 범행을 저지른 남자가 ‘여자가 한 짓처럼 보이게 해야겠어. 필요 이상으로 찌르고, 그중에는 별 효과가 없도록 슬쩍 찌르기도 해야지. 그러고 나서 못 보고 지나칠 리 없는 장소에 이 손수건을 떨어뜨리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가능한 일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자가 살인을 하고, 남자가 한 것처럼 보이도록 고의적으로 파이프 소제기를 떨어뜨리는 거죠. 또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두 사람이 각자 사건에 관련되었고, 부주의하게도 각자 자신을 드러내는 단서를 흘렸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좀 지나칠 정도로 우연의 일치가 많긴 하지만요.”
“하지만 그게 다 모자 상자와는 무슨 상관입니까?”
여전히 의아해하며 의사가 물었다. (P94)
“투 드 멤(그렇긴 하지만) 하필이면 오리엔트 특급이람. 다른 장소도 많았을 텐데.”
푸아로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부크가 이 사건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은 바로 이겁니다. 이 살인이 카세티가 과거에 배신한 범죄 집단의 짓인지, 아니면 개인의 복수극인지 말입니다.”
푸아로는 타다 남은 종이 조각에서 찾아낸 낱말에 대해 설명했다.
“내 가설이 맞다면, 편지를 태운 건 살인자였습니다. 왜일까요? 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인 ‘임스트롱’이란 이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스트롱 가의 사람 중 살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불행히도 난 잘 모르겠습니다. 암스트롱 부인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지만.”
계속해서 푸아로는 콘스탄틴 의사와 의견이 일치한 여러 가지에 대해 설명했다. 부크는 부서진 시계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밝아졌다.
“살인이 일어난 시각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 같군요.” (P102)
푸아로가 잠시 생각에 잠겨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알아낸 걸로 봐서는 매퀸 씨와 몇 마디 더 나누어 보는게 좋을 것 같군요.”
곧 젊은 미국인이 나타났다.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후 몇 가지를 더 알아냈습니다. 이를테면, 라쳇 씨의 정체 같은 것 말입니다.”
헥터 매퀸이 흥미를 느낀 듯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래요?”
“라쳇이란 이름은 당신 생각대로 가명이었습니다. 사실 라쳇은 이름난 어린이 유괴범, ‘카세티’란 남자였습니다. 그 유명한 ‘데이지 암스트롱 사건’도 그의 짓이지요.” (P115)
“주홍색 잠옷을 입은 여자가 침실에 들어온 적은 없어요.”
“그렇다면 라쳇 씨의 침실로 들어간 게 분명하군요.”
허바드 부인은 입을 오므리며 쌀쌀하게 말했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에요.”
푸아로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옆방에서 여자 목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군요, 푸아로 씨. 정말 신기하네요. 사실 대로 말씀드리자면, 들었답니다.”
“하지만 좀 전에 어젯밤 옆방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냐고 물었을 때, 부인은 라쳇 씨의 코고는 소리밖에 못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간은 코를 곤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때 외에는.....”
허바드 부인은 얼굴을 붉혔다.
“말하기가 좀 민망하군요.”
“부인이 여자 목소리를 들은 게 언제였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잠깐 깨는 바람에 여자의 말소리를 들은 것뿐이니까요. 여자가 어디 있는지는 분명했어요. 그래서 난 생각했죠. ‘저런 종류의 남자였군! 뭐, 놀랄 일도 아니지.’ 그러고는 다시 잠들었어요. 물론, 그런 일은 이렇게 캐묻지 않으면 낯선 신사 분들에게 말씀드릴 일은 아니죠.”
“부인의 방에 남자가 들어오기 전의 일이었습니까, 후의 일이었습니까?”
“어머, 그건 방금 물으셨던 것과 같죠! 죽은 그가 어떻게 여자에게 말을 할 수 있겠어요?” (P138-139)
“뭘 쓰고 있습니까?”
부크가 물었다.
“나는 깨끗하게 정리해 두는 습관이 있어서요. 사건을 시간 순서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푸아로는 다 쓰고 나자 부크에게 종이를 넘겨주었다.
9시 15분 기차가 베오그라드를 출발
9시 40분경 하인이 라쳇 씨의 옆에 수면제를 놓고 침실을 나옴.
10시경 매퀸이 라쳇 씨 침실에서 나옴.
10시 40분경 그레타 올슨이 라쳇을 목격(살아 있는 마지막 모습).
추가: 그는 독서중이었다.
12시 10분 기차가 빈코브치 출발(예정보다 늦게).
12시 30분 기차가 폭설을 만남.
12시 37분 라쳇 씨의 벨이 울림. 차장이 찾아옴. 라쳇은 ‘아무 일도 아니오, 실수로 눌렀소’라고 프랑스어로 말함.
1시 17분경 허바드 부인이 침실 안에 어떤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여 벨을 눌러 차장을 부름. (P145-146)
“확실히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당신 생각대로라면 저 여자와 뻣뻣한 대령 두 사람이 함께 관련되어 있겠군요.”
푸아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점이 증명되지 않는군요. 두 사람이 함께 관련되어 있다면, 서로 상대방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줘야 하지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더벤햄 양의 알리바이는 생전 처음 만난 스웨덴 여자가 증명해 주고, 아르버스넛 대령의 알리바이는 죽은 사람의 비서인 매퀸 씨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답니다.”
“그녀를 의심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죠?”
부크가 되새겨주었다. 푸아로가 미소를 지었다.
“아! 하지만 그건 심리학적인 것이지요. ‘더벤햄 양이 이 범죄를 계획했을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죠. 난 이 사건의 배후에 냉정하고 지적이며 뛰어난 두뇌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더벤햄 양이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부크는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내겐 저 영국 아가씨가 범인으로 보이지 않는군요.”
“글쎄요, 자, 이제 마지막 사람이로군요. 하녀인 힐데가르데 슈미트를 만나 보지요.” (P199-200)
“두 명의 살인자라니..... 그것도 이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부크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럼 악몽 같은 이야기를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봅시다. 어젯밤 기차에는 알 수 없는 낯선 사람이 두 명 있었습니다. 하드맨 씨의 설명에 맞아떨어지는 차장으로 힐데라그데 슈미트와 아르버스넛 대령과 매퀸 씨가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주홍색 잠옷을 입은 키가 크고 날씬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피에르 미셸과 더벤햄 양과 매퀸 씨 그리고 내가 직접 목격했고, 아르버스넛 대령은 냄새로 느꼈습니다 그녀는 누구일까요? 승객 중 그 누구도 주홍색 잠옷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고 그 여자 역시 사라졌습니다. 그 여자와 가짜 차장은 동일 인물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요? 그 두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차장 제복과 주홍색 잠옷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 그럼 범위가 한정되는군요!” (P214)
더벤햄이 미소지었다.
“당신은 저만 남겨두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나요?”
“하지도 않은 생각을 했다고 우기시는군요, 더벤햄 양.”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 말이 맞죠?”
“마드무아젤, 이런 속담이 있지요......”
“‘변명은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말을 하려고 하셨죠? 제게도 관찰력과 상식이 있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당신은 제가 이 혐오스런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전에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데도요.”
“마드무아젤의 상상일 뿐입니다.”
“아니요, 절대로 상상 따위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요. 진실을 놔두고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기만 하고요.”
“그리고 마드무아젤께서는 시간 낭비를 싫어하지요. 그래요, 당신은 곧장 본론으로 뛰어드는 걸 좋아합니다. 직접적인 방법을 말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툭 터놓고 묻겠습니다. 내가 시리아에서 언뜻 들었던 몇 마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그때 난 좀 걸을 생각으로 코냐 역에서 기차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마드무아젤과 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드무아젤께서 말씀하셨죠. ‘지금은 안 돼요, 지금은,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요.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그때는.....’이라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었습니까?”
더벤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살인을 뜻하는 말이었다는 건가요?”
“묻고 있는 건 나입니다.” (P256-257)
세 사람은 마지막 객실 앞에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크가 물었다.
“다음엔 무얼 하지요?”
푸아로가 말했다.
“식당차로 돌아갑시다. 이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냈습니다. 승객들의 증언을 들었고 짐도 수색했습니다. 더 이상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없습니다. 이젠 우리가 머리를 쓸 차례입니다.”
푸아로가 담뱃갑을 찾으려고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곧 따라가겠습니다. 담배가 필요할 것 같군요. 이건 대단히 어렵지만 그래서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누가 그 주홍색 잠옷을 입었을까요? 지금 그 옷은 어디에 있을까요? 알고 싶습니다. 이 사건엔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복잡하게 꾸며졌기 때문에 어려워요. 하지만 토론을 해 봐야지요.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푸아로는 서둘러 자기 방으로 갔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여행용 손가방 안에 담배가 들어 있었다.
푸아로는 손가방을 내려놓고 자물쇠를 풀었다. 다음 순간 그는 뒤로 물러서서 망연히 가방 안을 쳐다보았다.
가방 안에는 용이 수놓아진 주홍색 실크 잠옷이 깔끔하게 개켜진 채 놓여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이로군. 이건 도전이야. 좋아. 받아들여 주지.” (P245-246)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설명이 필요한 사항들
1.‘H'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진 손수건은 누구의 것일까?
2.파이프 소제기는 아르버스넛 대령이 떨어뜨린 걸까, 다른 사람이 떨어뜨려 놓은 것일까?
3.주홍색 잠옷을 입었던 사람은 누구일까?
4.차장 제복을 입고 변장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5.시계 바늘이 1시 15분을 가리키는 이유는?
6.살인자가 그 시간에 범행을 저질렀을까?
7.그 이전일까?
8.그 이후일까?
9.라쳇 씨가 여러 사람에게 찔렸다는 걸 확신해도 될까?
10.라쳇 씨의 상처를 다르게도 설명할 수 있을까? (P259-260)
“범행이 외부인의 소행으로 보이게 하려는 계획이었다는 말입니다. 기차가 새벽 12시 58분에 브로드 역에 도착했을 때 범인이 도망친 걸로 꾸미려 했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통로에서 차장 제복을 입은 이상한 사람을 보았다고 증언했을 겁니다.
차장 제복은 어떻게 범행이 저질러진 건지 보여 주기 위해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버려졌을 테고요. 승객들에겐 전혀 혐의가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범행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런 식으로 보이도록 계획한 겁니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린 왜 범인이 피해자와 함께 그렇게 오랫동안 객실에 머물러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기차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마침내 범인은 기차가 움직이지 않으리란 걸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계획을 바꿔야 했습니다. 범인이 여전히 기차를 타고 있다는 게 알려지게 되었으니까요.” (P275)
“실례합니다. 부인, 손수건을 떨어뜨리셨습니다.”
푸아로는 조그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백작부인은 그걸 받아들고 흘끗 쳐다보더니 푸아로에게 되돌려 주었다.
“잘못 아셨어요. 제 손수건이 아니에요.”
“부인의 손수건이 아니라고요? 확실합니까?”
“물론이에요.”
“그렇지만 여기에 부인 이름의 머리글자인 ‘H'가 새겨져 있는데요.”
백작이 움직였지만 푸아로는 무시했다. 푸아로의 시선은 백작 부인의 얼굴에 못 박혀 있었다.
푸아로를 가만히 쳐다보며 그녀가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제 머리글자는 ‘E.A.'예요.”
“그렇지 않을 텐데요. 부인의 이름은 엘레나가 아닌 헬레나입니다. 린다 아덴의 둘째 딸인 헬레나 골든버그지요. 바로 암스트롱 부인의 여동생인 헬레나 골든버그요.”
잠시 동안 쥐 죽은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백작과 백작 부인의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푸아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제 말이 맞죠, 안 그렇습니까?”백작이 분노를 터뜨렸다. (P281)
“거짓을 말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들이대면 대개는 깜짝 놀라면서 인정을 합니다.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추측하는 일이 꼭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그것만이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죠. 난 승객들의 증언을 차례차례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엇에 대해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하고요. 만약, 이 ‘만약’이란 말에 유의하십시오. 만약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이런 이유로 이 거짓말을 한다는 답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난 그 방법을 안드레니 백작 부인에게 써서 만족할 만한 성공을 얻어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 볼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당신 추측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혐의를 벗는 거지요.”
“아, 일종의 소거법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다음엔 누구를 상대할 겁니까?”
“신사 중의 신사인 아르버스넛 대령을 상대할 겁니다.” (P295-296)
“백작 부인이 말해 줬다니오? 그런 일은 없었는데요?”
“내가 백작 부인에게 가정 교사나 말동무에 대해 물었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까? 만일 더벤햄 양이 관련되어 있다면 그 집안에서 그런 역할 했으리라고 미리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안드레니 백작 부인이 말한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붉은 중년 여자였지요. 사실 모든 면에서 더벤햄 양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너무나 두드러지게 말입니다. 그런 다음 백작 부인은 재빨리 이름을 하나 만들어야 했는데 무의식중에 떠오른 이름이 프리보디였습니다. 기억나실 겁니다.”
“그래서요?”
“잘 모르시겠지만 얼마 전까지 런던에는 ‘더벤햄과 프리보디’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더벤햄이란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백작 부인은 재빨리 다른 이름을 생각해 냈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이 프리보디였던 겁니다. 당연히 난 곧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거짓말이었군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의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 사건은 더 어렵습니다.”
“세상에! 그렇다면 기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부크가 격분해서 외쳤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밝혀내야 하는 문제입니다.” (P306-307)
콘스탄틴 의사의 말에 부크가 말했다.
“동감입니다. 기차에 탄 열두 명의 승객 중에 아홉 명이 암스트롱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군요. 다음은 뭘까요? 아니, 다음엔 누구일까요?”
“당신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우리의 미국인 탐정 하드맨 씨가 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도 자백하러 오는 걸까요?”
푸아로가 대답하기 전에 그 미국인이 그들의 식탁 옆으로 다가왔다. 하드맨은 그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본 다음 자리에 앉으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지금 이 기차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내겐 마치 정신 병원처럼 보이는군요.” (P314)
푸아로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 모두 조금씩은 영어를 알고 계시므로 영어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린 새뮤얼 에드워드 라쳇, 일명 카세티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사건에는 두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두 가지 해결책을 여러분 앞에 제시하고, 그중 어느 것이 옳은지 여기 있는 부크 씨와 콘스탄틴 의사 선생에게 물어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라쳇 씨는 오늘 아침 칼에 찔려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어젯밤 12시 37분까지는 살아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시간에 차장에게 문을 통해 이야기했으니까요. 피해자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시계는 심하게 쭈그러진 채 발견되었고, 1시 15분에 멈춰 있었습니다. 시체를 검시한 콘스탄틴 의사 선생은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를 사망 시간으로 추정했습니다. 새벽 1시 30분쯤에 기차가 눈사태 속에 파묻힌 건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시간 이후로 누군가 기차를 빠져나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뉴욕 탐정 사무소의 직원인 하드맨 씨의 증언에 따르면(이 말에 몇 사람이 하드맨을 돌아보았다) 그분의 침실인 16호실 앞을 지나간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린 살인범이 이스탄불-칼레행 열차의 승객 중에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우리의 가정이었습니다.“ (P319)
푸아로가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승객 중 어느 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증명하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신기하게도 승객 각자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증언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매퀸 씨와 아르버스넛 대령은 서로 상대방의 알리바이를 입증했습니다. 이전에 친분이 있었다고 생각하기가 가장 어려운 두 사람이 말입니다. 똑같은 일이 영국인 하인과 이탈리아 인 사이에서, 그리고 스웨덴 여인과 영국 아가씨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정말 이상해, 승객 모두가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을 리는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고 나서 전 상황을 이해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관련되어 있었던 겁니다. 암스트롱 사건과 관련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연히도 같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우연이 아니라면 꾸민 일이겠지요. 전 아르버스넛 대령이 배심원 제도에 대해 했던 말을 기억해 냈습니다.
배심원은 열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엔 열두 사람의 승객이 있습니다. 라쳇 씨는 열두 차례 칼에 찔렸습니다. 이것으로서 내내 의아했던 것. 왜 이런 한산한 때에 이스탄불-칼레행 열차에 승객이 많이 몰렸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라쳇 씨는 법의 심판을 피해 미국에서 달아났습니다. 라쳇 씨가 유죄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전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처형하기 위해 스스로 배심원이 된 열두 사람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 진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은 각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연기해 낸 완벽한 모자이크 그림이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혐의가 걸리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혐의가 풀리는 증언을 해 주어서 사건을 모호하게 만들도록 짜여 있었던 겁니다. 하드맨 씨의 증언은 다른 객차의 사람이 의심을 받게 되고 그 사람이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스탄불 열차에 탄 사람들에겐 위험할 것이 없었습니다. 증언의 세세한 부분까지 미리 짜여져 있었으니까요. 모든 것이 퍼즐처럼 아주 치밀하게 계획되었고 새로운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더욱 해답을 찾기 어렵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부크 씨가 말했던 대로 이 사건은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보이도록 짜여 있었으니까요.......... (중략)” (P328-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