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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 언니 이야기

<소설> 그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그녀들

by 은주

애자의 나이 스물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원자력 발전소에서 영국인 기술자를 만났다. 그는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으로 파견 나온 전기·기계 기술자였다. 가느다란 몸 위에 감색 A라인 치마와 리본이 달린 상아색 블라우스를 걸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의 심장 속에는 나비가 일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생머리와 차분한 웃음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애자는 가부장적인 시대 속에서 여자를 위해 의자를 빼주는 그의 다정한 몸짓과, 웃을 때마다 반달로 접히는 그의 이국적인 눈매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그는 때로 그림을 그려 설명했고, 영한사전을 펼쳐 보여주며 뜻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랑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외국인과의 연애를 창피한 일로 여겼던 애자의 홀아버지는 회사 출근까지 저지했다. 아버지가 방문을 숟가락으로 걸어 잠그면 창문을 통해 맨발로 그를 만나러 갔고, 결국 반강제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결혼했다. 행복의 시작이 될 거라 믿었지만, 긴 굴욕의 시작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38시간의 비행 끝에 처음 영국 땅을 밟았다. 1987년, 그때는 직항 편이 없어 알래스카를 거쳐 세 번을 갈아타야 닿을 수 있는 곳, 그녀에게 ‘영화로운 나라, 영국(the glorious country, England)’이었다.

그리고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언어도 달랐고 가진 돈도 없었고 돌아갈 곳도 없었다. 남편이 생활비를 부담했지만, 그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없었다. 장을 보면 가계부를 써야 했고, 남편은 낭비한 것이 없는지, 개인 물건을 산 건 아닌지 하나하나 따졌다. 그녀를 위해 산 화장품 하나도 지적하는 그를 보며 서운함을 넘어 모욕감 마저 들었다.


한국이라면 번듯한 직장이 있었겠지만, 이곳에서 언어가 서투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잣집 청소 일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였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외국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는다’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게으르고, 못 먹어서 비쩍 말랐고, 식사 예절도 없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키 크고 잘생기고 많이 배운 장남이 동양의 못 사는 나라에서 처자를 데려온 것을 불쾌해했다. 임신 중 피곤함은 게으름으로, 입맛에 맞지 않아 과일만 먹는 것을 예의 없음으로 여겼다. 말이 통하지 않아 변명할 길도 없었다. 물을 많이 쓴다며,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며, 매일 같이 비수 같은 말을 쏟아냈다. 남편은 언제나 모른 척했다. 그녀는 ‘갈 데 없는 여자’로 외로움 속에 홀로 서 있어야 했다.


이혼이라는 선택지가 없었던 이주여성들의 눈물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시절 국력이 약한 나라에서 온 그들은, 사랑받아야 할 가족의 품에서조차 따뜻함 대신 외로움과 모멸을 견뎌야 했다. 인내는 끝이 없었고, 삶은 점점 더 고달파졌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가끔 방문하는 한국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언제나 좋은 집으로 시집간 팔자 좋은 딸을 연기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시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렸다. 애자는 십 년 넘게 똥 기저귀를 갈며, 그녀의 곁을 지켰다. 애자의 친정어머니는 그녀가 세 살 때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마지막 길을 잘 배웅하려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싶었던 것인지, 혹은 단지 동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어머니의 기억은 그녀를 처음 본 1987년에 가까워져 있었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며느리.”

시어머니는 상황 구분 못하는 유치원생처럼 참지 않고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그 말은 처음으로 애자가 보따리를 싸게 한 말이었다. 짐을 꾸렸는데 막상 갈 때가 없어 집 앞바다를 보며 한참을 울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그 말을 반복했다.

애자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머니, 그 말은 이제 상처가 안 돼요. 그리고 한국은 그렇게 못살지 않아요. 비행기로 열세 시간이면 가요. 지금이라면… 도망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곳엔 이제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그녀를 시집살이시키던 시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낸 것은, 아마도 여러 감정이 뒤섞인 결과였으리라. 더 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지 못할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애자는 어쩌면 아주 작은 복수의 우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장례식 후 그녀는 이제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어머니의 모진 말속에 매번 자신을 홀로 세워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피로가 쌓여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조용히 끝났다.

이혼서류에 서명하던 날, 애자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남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치장을 시작했다. 화장도 하고, 실크 블라우스와 막스마라 코트도 샀다. 삐쩍 말랐다는 단점은 요즘 시대엔 장점이 되었다.

새로 이사 간 집 근처의 초콜릿가게에 점원으로 취업했다. 이제 사고 싶은 거를 사도 눈치 줄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만 보고 ‘사장님’이라 불렀다. 아니라고 설명해야 했지만 ‘호텔 쇼콜라의 사장님’ 그 말이 주는 달콤한 거짓에 자신을 녹여 넣었다. 침묵함으로써 그녀는 그곳의 사장이 되었다.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거야’

본인을 포장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가게에 자주 오는 돈 많은 사람들과 동등해지고 싶었다. 진짜 캐서린이라도 되듯 가게의 돈을 조금씩 빼 쓰기 시작했다.

'이만 파운드 정도는 침묵의 대가로 괜찮겠지.'

캐서린의 가게였지만, 세무 신고는 리처드가 처리했다. 그의 회계사 친구가 장부와 실제 현금의 차이를 발견하기 전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캐서린은 아마 모를 거예요. 그 돈은 저한테 갚으면 돼요.”

무슨 이유에선지 최근 들어 가게에 자주 왔던 리처드가 말했다.

왜 그한테 갚아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질문하지 못했다. 그는 다정해 보여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리처드가 본색을 드러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빚’을 갚은 방법을 추후에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그가 바람둥이라는 건 공공연한 소문이었지만 부인의 친구까지 어쩌지는 못할 꺼라 생각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애자를 뒤에서 끌어안듯 붙잡아 초콜릿 재고 창고로 데려갔다. 방 안은 어두웠고, 문은 잠겨 있었다. 그녀는 힘껏 그를 뿌리치다가 벽에 부딪쳤다. 그의 비웃음이 들렸다.

“지금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닐 텐데. 돈은 준비했고?”

“2만 파운드를 며칠 사이에 어떻게 마련해요? 천천히 갚을게요”

그는 이번엔 넘어 가지만 다음엔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 그날 이후, 애자는 또다시 누군가의 통제 아래에 갇혔다. 겨우 남편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지만, 더 깊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쇼윈도에 진열된 초콜릿을 정리하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단정한 머리, 실크 블라우스, 크림색 스커트, 와인색 립스틱. 겉으로는 세련된 상류층 여성처럼 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곳에는 어린 애자가 있었다.

한국의 바닷가 마을, 오래된 시골집, 아버지의 잔소리, 다린 교복 치마, 갈래머리.

웃고 있는, 빛나던 소녀였다.


눈을 뜨면 현실은 암담했다. 몰래 빼서 쓴 돈, 독촉하는 리처드의 전화, 거짓된 미소, 연체된 카드 명세서.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한마디.

“못 사는 나라에서 온 며느리.”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애자는 중얼거렸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가난하게 늙는 건… 내 잘못이야.”

그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난하게 늙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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