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와 아이들 - No양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최소한의 자세,
말을 대하는 태도,
본인의 의지.
언제나 밝은 쌤이지만,
이 순간 만큼은 외친다.
'사딸라'
우리는 1인칭의 시점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나이와 별개로, 나의 모습은
타인만이 볼 수 있다.
운동을 할 때에는,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말 위에 있을 때,
나는 현장의 안전책임자로 함께 자리한다.
최소한의 '자세' 는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다.
사실 단순하다.
허리를 잘 펴고 앉아야 한다.
말의 움직임이 몸에 전달되기에,
허리를 잘 펴지 못하면 다칠 수 있다.
설명을 하면, 모른다.
일단 허리를 펼 수 있도록 반복한다.
잘 할 때에도, 계속 체크한다.
'지금처럼 허리를 잘 피는거야! 잘했어!'
이야기 하며,
덩달아 나도 자세를 확인한다.
행복해서 웃을까,
웃으면 행복할까.
말이 좋아서 이뻐보일까,
말이 이뻐서 좋아질까.
이 표현들의 핵심은
팩트체크가 아니다.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는,
감정을 불러온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화가 난다.
애정을 가진만큼,
실망도 커진다.
우리의 어여쁜 존재들은
표현이 명확하다.
그 표현에 진심이 담겼을 경우,
나는 양보하지 않는다.
'아니. 말은 잘 몰라. 다시 알려줘.
이쁘다 하고 칭찬해줘.'
단호하게 알려줘야 한다.
함께 하는 파트너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런 시간이 쌓이며,
무너질 수 없는 유대감이 생긴다.
나는 아이들이 힘들 때,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
스스로 견디기 어려워도
말을 못 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하지만 간혹,
별다른 이유 없이 거짓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설득하는 경우도 있다.
속아줄 때에는 속아준다.
하지만, 스스로 거짓을 말할 땐 안 된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단호하게 말한다.
'사딸라'
(기분이 나빠서) 안할래요.
(짜증이 나서) 내릴거야.
(아 몰라) 힘들어.
다시, 이유를 묻는다.
단지 감정적인 이유라면, 양보할 수 없다.
이유없이 포기하는 순간들이 쌓이면,
스스로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
우리 소중한 존재들은
이내 이겨내고, 노력한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말한다.
'오케이, 땡큐!'
다른 이가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부모님께 말하고,
상담을 길게 한 적도 많다.
이해를 해주기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
나의 기준이자,
스스로에게도 적용하고 있기에.
나는 우리 소중한 존재들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단호해지길 바란다.
타협과 포기가 아닌,
시도와 감사에 물들어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