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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뒤 어스레한 상태. 또는 그런 때
-->‘땅이 검어지는 때’라는 의미의 '땅검이'에서 변형된 단어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현금은 잿빛이 고이는 땅거미의 시간을 '낯설고 적대적이던 사물들이 부드럽고 친숙해지는 시간'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불문학자의 글에서 읽은 건데 불란서 사람들은 해가 지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질 무렵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대. 멋있지? 집에서 기르는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낯설어 보이는 섬뜩한 시간이라는 뜻이라나 봐. 나는 그 반대야. 낯설고 적대적이던 사물들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친숙해지는 게 바로 이 시간이야. 그렇게 반대로 생각해도 나는 그 말이 좋아. 빛 속에 명료하게 드러난 바깥세상은 사실 나에겐 만날 만날 낯설어. 너무 사나워서 겁도 나구, 나한테 적의를 품고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아서 괜히 긴장하는 게 피곤하기도 하구. 긴장해봤댔자지, 내가 뭐 할 수 있겠어. 기껏해야 잘난 척하는 게 고작이지. 그렇게 위협적인 세상도 도처에 잿빛 어둠이 고이기 시작하면 슬며시 만만하고 친숙해지는 거 있지. 얼마든지 화해하고 스며들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으로 바뀌는 시간이 나는 좋아.”(<아주 오래된 농담>, P.111-112)
해거름 지나 땅거미가 내려앉는 순간...
어둠과 빛이 서로에게 갈마들며 세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운다. 하루의 끝자락을 향하는 찰나이자 하강하는 해를 따라 분주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는 침잠의 시간이다.
폭설이 예보된 날,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꽁꽁 얼어붙은 찬 공기 속 땅거미를 마주했다. 아스라한 잔광이 걸쳐진 하늘에 먹물같은 어둠이 번져간다. 오늘도 무탈한 보통의 하루였음에 감사하며 또다시 고여오는 어둠 속으로 성큼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