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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Apr 22. 2024

 소생의 시간 새벽 6시

생의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시간

@pngtree

갱년기의 알림은 마치 종합세트처럼 찾아온다. 그래서 '도대체 뭐 어떤 증상이 있냐?'라고 물으면 딱히 어떻다고 대표 증상 한 가지로 말하기가 어렵고 곤란하며 답하기도 귀찮다.


하지만, 요즘 내가 느끼는 증상 중에 하나는 새벽잠을 설치는 것이다. 예전처럼 불안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눈이 떠지고 문득 몇 시인지 궁금해서 보면 2시 30분,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 또 눈이 떠져 보면 4시, 그래도 일러서 다시 잠을 청하다 어느 순간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이 또 떠지는데 어정쩡한 시간 5시 30분.

딱히 그 시간에 일어나 뭘 준비할 것도 없다. 알람도 6시 30분부터 남편과 내 휴대폰에서 차례로 울린다. 누운 채로 휴대폰을 들고 손가락으로 밤새 세상 소식을 뒤적인다. 그러다 보면 주인의 기상을 눈치챈 강아지가 밥 달라고 보채니 귀찮아서라도 일어나게 된다.

강아지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주고 커피 대신 달콤한 향내 가득한 녹차 티백을 우려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마신다.  문득 맞은편 아파트의 빼곡한 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새벽 시간에 불이 다 꺼진 아파트에서 두어 집 정도 불이 훤히 켜진 걸 보면 '저 집의 어떤 학생이 아직까지 공부하느라 불을 켜 놓고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왜 '학생'이라고 늘 단정 지어 생각했을까? 더러는 누군가 tv를 보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을 수도 있다. 새벽까지 일을 끝내지 못한 누군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날 준비할 일이 많아 새벽같이 일어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오지라퍼처럼 모두가 잠든 밤에 훤히 불이 켜진 이유가 그리도 궁금한 나 자신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났다.       

주인이 내준 아침밥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강아지가 어느새 곁에 와 앉아서 나를 올려다본다. '엄마, 이제 뭐 해?' 심심하다는 듯이.


인심 쓰듯 오늘은 아침 산책을 시켜주마 하고 나선 이른 아침 산책길.

제일 먼저 아파트 마당에서 택배 트럭의 문의 닫고 출근길에 나서는 건실한 청년을 봤다. 어느 집 아들인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새벽일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느껴질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잠시 그의 등에서 안쓰러움이 스친다. 봄날의 화려한 꽃잔치도 이제 끝이 났는지 어느새 골목마다 초록으로 무성하다. 불과 며칠 사이의 변화라 놀랍기만 하다.

새벽이슬 머금은 촉촉한 땅에서 올라오는 흙내와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이 뿜어내는 냄새가 뒤섞여 기분 좋은 새벽 공기. 아주 오래 잊고 살았던 아침 공기다.  

야채 도매상가 앞엔 배춧잎과 정체 모를 이파리, 양파 껍질이 흩어져있다. 밤새 상하차로 바빴을 흔적들이다.

밤늦도록 손님이 머물렀을 먹자골목. 술꾼들이 사라진 아침의 거리엔 새벽 가로수들이 숙취를 깨운다.  오늘 쓸 식재료가 벌써 가게 문 앞마다 박스 채 쌓여 주인을 기다린다.  그새 여기도 새벽 배달차들이 한바탕 다녀간 모양이다. 내가 밤새 잠을 못 이룬다고 일어나 앉아 불평하고,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새 하루를 알리는 새벽의 일출, 오랜만에 본 이른 아침의  풍경. 그리고 아직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의 아침 공기.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생의 에너지다.


#아침산책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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