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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Oct 16. 2024

우울이 내게 뭐 별 큰 일이었나?

진단



애초에 우울했던, 웃음 짓는 일이 어릴 적부터 잘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이렇게 써 본다. 그랬던 것을 또렷이 인지한 건 몇 년 안 된 일이다... 내게도 사랑만 받아먹고 시선에서 자유로우며 세상이 안전했던 잠시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반짝 사랑받던 잠시.

그러나 이내 돌아서는 모든 내가 아는 인간들의 뒷모습을 보아야 했고 처연히 그 자리에서 서두르지 못했던 나


아주 어려서부터였다. 어둑어둑해지면 밤이 온다... 어둑한 밤이 작은 온몸을 휘감아 돌며 숨도 쉬지 못하게 나를 죄었으며 그 시간대에 대해 포기해야 했다. 늘 찾아드는 오직 내가 목표물인 밤, 나만의 밤. 밤이란 건 그런 것일 뿐이었다. 누워 숨만 쉬는 밤 서거나 걸으며 앉으며 숨만 쉬던 낮을 띄엄띄엄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때 그냥 그런 시간. 그나마 쉬던 숨을 죽여 자는 척했다.

누구와도 이야기 나눈 적 없었다는 사실이,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 나눈 기억이 없는데도 그 사실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기대였을까? 이게 내가 살 수 있는 전부인가 하고?


이따금,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와 아빠의 낄낄대거나 누군가의 이름을 뱉으며 툴툴대는 소리가 들렸다. 말의 내용들은  어둡고 가볍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것들 뿐이었지만 대부분. 그렇지만 둘에게는 분명 나와는 관계없는 관계성이 있었다.


여덟 살부터의 기억, 할아버지 댁에서 엄마아빠의 직장이 있는 도시로 이사하며 시작돼 그대로 굳은 내 어린 시절의 그

억울하고 눈물겹고 아무 소리도 아무 향도 없는 나날들...


나는 아마 오랜 우울을 그때부터 겪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견디며 사는 힘을 기억해 다시 그 반동으로 일어나 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내게 또는 내가 내게

그렇지만 그건 내 인생 최대의 거대한 힘이었고 그야말로 죽지 못해 짜내던 다시 끄집어내도록 남아있지 않은 희한한 괴력이었던걸. 내가 내 것이라 여기고 활용도를 달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을.


그렇게 나는 늘 어두웠다


<... 애어른 같이 구는 게 난 징그러워 니가.>

<어떻게 귀엽고 이쁜 맛이라는 게 없어 애가>

<으시딱딱해가지구는... 야 됐어 저리가>


내가 무슨 대답을 무슨 반격을 한 적이 있었을까? 왜 되묻느냐 한다면 이런 문장들은 무한으로 다시 귓바퀴에서 재생되고 누군가 내게 또는 내가 내게 또 해봐 또 해 봐 할 때마다 생생하지만 문장들이 끝날 무렵 희뿌옇게 내 얼굴이 뭉그러지고 내 의지와 신경은 싹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두려웠는데 기억은 무슨. 내가 무슨 말이란 걸 했을까.


불쌍한 그때의 나. 너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꿈에서라도 웅크린 너를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희끄무레한 뭉텅이로라도 그것이 너이기만 하다면.


나는 이 상태로 쭉 살았다.

지금보다 더 어른인 채로 , 맞아가며 말로 갈겨지며


말 그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모를 견뎌야 했다.

부모는 신경질적이었다. 습관적으로

할아버지댁에서 ‘데려온’ 후부터 맡겨 기르다 다시 함께 살 계획이 있었음에도 어린 아기일 때는 귀엽고 볼이 뽀얗던 애였는데 어느새 훌쩍 키도 얼굴 골격도 달라진 애와 적응하기가...

... 불편하고 싫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쓰는 내게 또 미안하다.

그게 사실이라는 점이. 별 수 없다.


그렇게 불편하고 싫었겠지, 내가

하는 마음으로 나는 유년을 견디며 보냈다.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반항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자연스레

말이 아예 없어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아이에서ㅡ어른들이 보기에, 뭐 선생님이나 부모의 친구들. 주로 내 부모가 나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 형식적으로 ‘참 답답하네’ ‘걱정이네... 그러게 왜 그럴까’했던 말들ㅡ사람 모이면 나서고 들뜨는 성격으로 까닭 모르게 변해있었고


이 시절은 이상하게 시멘트 발라 싹 긁어지듯 우리 모두에게 벽장 너머로 ...잠시 숨겨졌다.


스무살이 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이십 대를 무난히 보냈다.

엄마는 나와 늘 새롭고 신선한 갈등 ㅡ종교 갈등, 말투 갈등, 눈빛 갈등, 태도 갈등, (니 주제에 할 때)주제 갈등 등등 갖은 갈등ㅡ으로 끊이지 않고 생생하게 서로 분노하고 울부짖으며 살았지만 그 시절을 끄집어내진 않았다. 설령 내가 장난처럼 ’엄마, 나 어릴 때‘까지만 꺼낼라 쳐도 조용히 있던 아빠가 확 얼굴을 찌그리며 뭐 무슨 옛날 얘기 꺼내냐 짧고 강력한 경고를 던졌기 때문에 나는 포기해야 했다. 그냥 그 얘기 꺼내면서 나도 다시 목이 메어 오니까. 아 부모가 그걸 걱정하나? 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처해가면서.


미움받고 꾸역꾸역 살았다. 그러면서 내가 찾은 건 내 외모가 못났고 내 행동과 눈빛과 말투가 험하고 재수가 없는 거 아닐까 나는 왜 태어나 나도 고생 부모도 고생일까... 동생이랑 부모 셋이 있었다면... 저들은 좋아 보이네... 하고 멍하니 한 구석에 나를 두고 나도 같이 나를 아래로 뭉개고는 했다.


이제는 많은 나이.

많은 나이... 그들과의 물적 심적 거리도 많이 멀어진 지금, 이제

지금 와서 이것이 얼마나 오래 내 속에서 나이 먹지 않고 팔팔하게 살고 앉아있었는지 알아야만 한다니. 이런 절망을

이 시절에 또다시 마주해야 한다니. 잊었었고 대충 시멘트 벽 저 안쪽 어디에 있거나... 또는 단단히 섞여 굳고 말라 시멘트가 되었거나 내가 더 이상 다룰 일 없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이 우울이었고 우울은 또다시 목구멍을 뚫고 눈알을 뚫어 튀어나올 줄로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무언가 끝났을 것이라 여겼던 시점 이후에는 이따금 울적했고, 자주 가슴이 쿵 내려앉아 어딘가 무언가든지 손아귀로 움켜쥐어야 했고 눈치도 없이 울음이 터지고

아무 재미도 이유도 없었지만 그것이 무슨 기류라고 여겼던 적이 없었다. 이게 내 감정의 전부였고 습관이었으며 특히 내가 바꿀 수 없고 바꾸고 싶지도 않았으며 아니 이것을 바꾸지 않아도 나는 살고 있었기에 그 습관적 감정의 정확한 생김새를 알아볼 일이 없었다. 아무런 단초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주하지 못하고 비닐 같은 걸로 그걸 그냥 덮어둔 셈이었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알아채는 순간 가슴 짓누르는 공격이 단 한 차례 아주 세게 일어난다. 나에 관해 나는 무관한 척 모른 체 했던 것일수록. 아주 자명한 사실일수록


무언가 먹고 마시던 기억이 없고 사람이 아니라 사람 형상으로 어떤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으며 아주 단편적인 끔찍한 몇 장면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의심한 적 없었던 누구나 그렇겠지 뭐, 하면서 누군가들이 모인 가운데의 누구나 인척 살았던 그때의 기묘한 나.

 

그걸 두고도 나는 모든 걸 평범했지. 아름다웠어...

들릴 듯 말 듯 뭐 그런 말을 했다가

뭐 평범했지. 그냥평범한거지... 했다가 의심 앞에 내가 나를 여기서 홀로 나를 의심하기가 너무나 외로웠고 비참하고 어이가 없었다.



큰 일이었다.



몇 년 전 이른 오후에 스물스물 쏟은 물 기운 번지듯 내게 새삼스러울 것 없던 그 감정이 내 발끝으로 미끄러져 달겨들었다.

무엇인지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솟구치다 나갈 데를 못 찾고 나를 괴롭혔다.

범불안장애, 우울증 신체화 증상 등을 확인했다. 약을 처방받았다. 약이 참 많았고 약을 들키지 않으려고 약봉지를 숨기느라 급급했다. 여기저기서. 일일이 약 종류와 쓰임을 검색해 보면서 보냈다. 몸은 빠르게 더욱더 나빠졌고 내 몸에 신경질이 나니 무엇 하나 낫고 떨어져 나가는 게 없었다.



신체화가 맞는지 실제 병증인지 확인하기 위해 몇 주 간 몇 군데고 돌아다니며 진찰받았다. 어느 내과 선생님께서는 지금 그거보다는... 심적으로 많이 안 좋으시죠. 안정제를 좀 처방해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했다. 일면식 없는 의사 선생님들께 받는 위로들로 한 주 한 주 버텼다.


울적한 기분이 뭔 별거라고. 울적할 적마다 뭐 이따 말로 나를 눌러왔던 나는 멍청했던 나를 천천히 웃으며 아주 천천히 재확인해봤다. 지난 건 지났다고 생각했고 이제 나는 명랑하고 가끔 울적하다고 확신했다. 나를 돌봐 본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나 가장 정확한 감정은 생경함이었던 것 같다. 왜 치받칠 정도로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무엇이 있는 건지. 내가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언제나 일정 정도, 아침이 시작되면서부터 불안하고 불편했으며 늘 두통이 있고 잠을 이루지 못해 그냥 못 자고 마는 게 내겐 일상이었으므로. 모든 게 같이 뻗어나가고 있었으므로...

 

몰랐던 우울은 한껏 늘어져서 잘못 씐 영혼처럼 들어앉아 있다 적절한 자기만의 때에 맞춰 늙을 대로 늙은 몸의 구멍을 찾아 질금질금 비져나왔고 태세는 단호하다.


우습게 봤던 나라는 인간의 우울... 울적한 마음 정도

씁쓸한 날들, 허송세월... 같은 말로 비닐 씌워 덮으려던 얕은 나 자신. 나의 우울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뜬구름 같은 때로 짐짓 고상한 가라앉은 마음 같은 게 아니게 됐다. 그건 실체를 드러냈고 본격적으로 내 피부와 장기를 손상시키며 내가 삼키는 약물과 서로 잽을 날리며 첫 태세에서 급을 낮추지 않은 채 큰불같은 에너지로 내 일상 따위 볼 것도 없이 쓸어내 버리며 이제 어쩔래 넌 내가 한낱 마음 정도인 줄 알았지 나는 분명히 밝히겠다 그게 아님을.

선언한다. 밤낮없이 귀가 시끄럽도록



이제는 내 우울을 어떻게든 취급해 주어야만 한다.

조금씩 어제를 뭉개고 새 아침도 짓밟는 내가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나를 나는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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