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기대할 게 없다는 마음. 심지어 ‘내 그럴 줄 알았지’하는 말까지 터져 나오는 상황이라면…
한때는 짝사랑하는 연인처럼 애태우기도 했었는데 오래된 결혼 생활처럼 권태기가 온 걸까. 언제부터였다고 그 시점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혐오의 순간이 하나둘 쌓이다 어느 순간 선을 넘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싫어하게 되는 것도 수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으나 실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냥”만이 정답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유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점이 바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한때 도도함이라 여기며 사랑했던 그 모습이 이제는 오만함, 무례함, 파렴치함으로 보인다. 순수함은 무지함과 뻔뻔스러움이 되었다.
사실 동네를 산책하다 어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쓰레기만 보아도 그게 글감이 될 수 있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삶을 보고 싶어 집을 떠나온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중국인 이곳에서… 식은 사랑에 구구절절한 변명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 이유를 줄줄이 읊어대도 좋다. 설사 100% 사실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듣다 보면 조금쯤은 그 설렘을 함께 맛볼 수 있으니까. 향기롭고 몽글몽글한 기운이 전해지니까.
하지만 사랑이 식었을 때는 입을 다무는 편이 좋다.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이유는 그저 변명일 뿐, 사랑이 식게 된 진짜 이유도 아닐뿐더러 해롭기까지 하다.
젊은 시절 그런 실수를 한 적 있다. 내가 떠나는 이유를 끈질기게 물어오는 그에게 그냥 입을 다물었어야 했다.
“턱이 좀 너무 나왔지.”
설마 뾰족한 턱 때문에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는가. 외모를 보고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그건 헤어짐의 진짜 이유 일리 없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을 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던 지점을 건드렸던 것이고… 그는 결국 얼굴에 손을 댔고, 나는 한동안 그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다행히 요즘 매스컴에 나오는 그의 얼굴을 보니, 내 ‘헛소리’ 덕을 본 것 같아 죄책감은 사라졌다.)
식어버린 사랑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없다면, 그냥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너절하게 떠들어대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었으니...
사랑이 식는 건 내 잘못이 아닐지 모르지만, 식은 사랑을 잘 마무리하는 건 내 몫이 아닐까.
*교보문고에 실린 이은정 소설가의 인터뷰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