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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Sep 27. 2022

2-13. 섬 속 섬을 여행합니다

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13. 섬 속 섬을 여행합니다          



제주는 섬이지만 큰 섬이라 부모처럼 아이 같은 작은 섬들을 여럿 품고 있다. 성산 일출봉 너머에는 보석 같은 우도가 누운 소 모양으로 솟아있고 서귀포 앞 태평양에는 지귀도, 섶섬, 문섬, 범섬 같은 무인도들이 푸른 바다 위로 점점이 뿌려져 있다. 바람 많은 모슬포 아래로는 일출이 예쁜 형제섬과 싱그러운 보리밭이 장관인 가파도와 최남단 마라도가 제주 부속 섬의 정점을 이룬다. 서쪽 자구내 포구 앞에는 와도를 비롯한 차귀도가, 비취빛 협재 바다 위로는 마치 어린 왕자가 묘사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의 비양도가 제주의 바다를 다채롭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육지 남해와 제주 사이 그리움이 깃든 바다 가운데 낚시꾼들이 찾는 작은 섬 관탈도와 오롯이 큰 섬 추자도가 있다. 맑은 날 제주시 중산간에서 바라보면 제주섬 같지는 않지만 행정구역상 제주에 속한 추자도를 북쪽 바다 위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섬 속 섬 첫 여행으로 추자도에 다녀왔다. 제주로 이사온 후 첫 나들이였다. 추자도는 제주 사람들이 가볍게 나들이 갈 수 있는 섬은 아니다. 심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꽤 먼 곳이라 1박2일 이상의 일정으로 나름 공부하고 준비해야 풍성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인데, 우연찮게 편안히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온평리 마을에는 작은 교회가 있다. 주로 동네의 해녀 할망들이 모여 소박하게 예배를 하는 곳이었지만, 60년 전에 터를 잡은 유서 깊은 교회이기도 했다. 육지의 여느 큰 교회들처럼 높은 첨탑을 세운 큰 예배당, 웅장한 성가대와 우렁찬 기도, 쩌렁쩌렁한 설교와 주일날 몰려드는 많은 성도들은 없지만, 이곳 작은 교회에는 육성으로만 부르는 나직한 찬송과 내면을 돌이켜 드리는 기도, 심령을 울리는 묵직한 말씀이 있어서 육지에서 상한 심령으로 입도했던 우리 부부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수십 년간 온평교회를 묵묵히 맡아 꾸려온 집사님은 도내에서 오래 공직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는 추자도 면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주말부부처럼 주중에는 추자도에서 일하고 주말은 성산 온평리로 귀향하였는데, 먼 곳 나들이하기 어려운 교회 할망들을 모시고 추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이 여행을 돕고 함께 누릴 겸 일행으로 낯설고 먼 추자도행을 함께 했다.      


새로 취항했다는 쾌속선은 제주항에서 추자도까지 1시간여를 나는 것처럼 민첩하게 주파했지만, 작고 빠른만큼 파도의 요동에도 민감해 큰 바다에 들어서자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많은 솟구쳤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배멀미가 나 힘겨워했다. 나 역시 뒤집어진 속을 느린 호흡으로 다스리기가 힘겨워질쯤, 쾌속선은 상추자도에 접안하여 토하듯 우리 일행을 내려놓았다. 단단한 반석 같은 땅에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느낀 순간이었다.



추자도에는 면사무소와 학교, 가게들이 밀집한 상추자도와 더 큰 섬 하추자도가 있고, 이 둘은 연육교로 이어져 있었다. 대물을 낚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서 낚시가방과 커다란 어구를 소지한 낚시꾼들이 대부분이었고, 추자도 올레길을 걷기 위해 배낭을 멘 도보 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일행은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고루 함께했기에 가벼운 산행으로 추자도 등대에 올랐다. 맑은 날 오후, 추자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추자도 넘어 섬생이, 밖미역섬, 청도, 수덕도가 삼각 고깔처럼 솟았고 아득한 쪽빛 바다 화선지에 옅은 먹색이 번진 것처럼 장엄하고 그윽하게 번져 난 한라산은 꿈에서나 그릴 법한 이어도의 풍경 같았다.




금빛 조기 한점


                                                      (허영선 지음)     


오랜만에 고향에 온 아들 앞에

어머니 참굴비 한 마리 밥상에 내놓으셨네

내 어릴 적 캄캄 새벽 바다 길 떠나는 아버지에게

금빛 조기 한 점 구워 놓으셨듯이     

법성포 칠산바다 흑산도까지 조기잡이 다니던 시절

겨울이면 처마밑에 대롱대롱 한두름 꿰어

추자섬 북서풍에 시들시들 말리던 그것

자르르 베지근한 그 감칠맛 오래도록 입안 감돌아

갔다오마 기별 알린 배가 떠나고

다시 어머니 그 늙은 손에 굴비 한 마리 닿을 때까지

그 자르르 입안 터지던 맛 떠나지 않았네

아마도 사랑도 그러하리

그대 마음 등걸같은

말하지 않고도 단 한 점으로 전해지는 바로 그러한 것

웃는 땅 참굴비 축제마당에서 만나는 저 싱그런 살빛

내 어릴적 바다길 떠나덕 날의 어머니 마음이네



알록달록한 지붕을 이은 소박한 집들, 선명한 강아지 발자국까지 아로새겨진 좁고 아늑한 골목길에 석양의 따뜻한 볕이 가득 내리쬐었다. 가벼운 마실 후 어스름한 부둣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찌낚시를 했다. 펜션에서 빌린 초보용 낚싯대에 갯지렁이를 꿰어 낚싯줄을 내리자마자 포구에서 떼를 지어 유영하던 고도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큰아이 빈이는 요란한 챔질 없이도 손바닥만한 물고기들을 낚아 올렸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열 마리 남짓한 물고기들이 양동이 안에서 퍼덕거렸다.




펜션에서 먹은 저녁식사 역시 최고였다. 가정식 백반에 조기 몇 마리 구워 나왔는데도 그 음식맛이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남도식 김치와 밑반찬들이 입맛을 돌게 했다. 추자 사람들의 말투도 제주말보다는 목포 말씨에 바닷냄새가 한 숟갈 얹힌 느낌이었다. 행정구역상 제주의 부속섬이지만 음식도 풍경도 억양도 모두 전라도에 인접한 섬에서의 일박이일의 여행은 커다란 쉼이 되었다. 제주 생활이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제 육지의 풍경과 음식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제주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돌아올 때는 큰 배를 탔다. 요동치지 않는 큰 방 구석에 모로 누워 편안하게 추자도 여행을 반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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