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나는 어딨어? 아이들을 좋아하고 우선 해도 정작 아내는 없잖아
아내와 싸웠다. 아내와 싸우고 다투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매번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긴 이야기 끝에 내 잘못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싸우면 감정이 상하며 화를 내고 끝났었다. 잔소리를 하는 아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나도 기분이 상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다툼은 내 잘못을 확실하게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아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달랐다. 나는 가족에게 충분한 사랑과 헌신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그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내의 답변에 내 논리를 이야기했다.
1. 나에게 가족은 아내가 포함된 하나의 집단이다.
2.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3. 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한다.
이러한 삼단논법을 든 것이다. 대문자 T에 공감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논리를 들먹이는 나는, 아내의 한마디에 내 논리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가족에 나는 어딨어? 아이들을 좋아하고 우선 해도 정작 아내는 없잖아.]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아내는 아내다. 아빠의 역할 중에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러한 가족분위기를 만드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아내가 예전과 달라졌다며 이야기할 때마다, 그렇지 않다, 최선을 다한다고만 했지 아내의 이야기를 듣진 않았다. 아내의 변했다는 말에 발끈하는 철없는 나. 나를 공격하는 줄 알고 나 또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아내는 좋은 아빠지만 좋은 남편 아니라고 누누이 이야기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서도 아이들과 놀아 주었다는 답변을 했다. 내가 하는 대답과 변명에는 아이들과 가족은 있지만 아내는 없었다.
사실 아내가 육아를 하느라 힘들기 때문에 더 예민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시간을 더 주려고 한 것이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자신에게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듣고 보고 싶어 한 것은 아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내의 관점에서 결혼하기 전과 결혼 후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여자 친구가 먼저였고 결혼하고 나서도 아내가 먼저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서부터는 모든 우선순위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두 명의 아이가 되고 나서부터는 아내는 우선순위에서 사라진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자친구와 와이프를 두고 아이들만 보고 있다니.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았지 아내의 손은 잡지 않았다. 카페에 가서도 어디를 나가서도 내 두 손에는 아이들의 손이 쥐어져 있을 뿐.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만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난 다시 태어났다. 잘못을 알았으니 수정하면 된다. 어제부터 시작했다. 아내를 먼저 보고 이야기를 하고 표현할 거다.
[갱, 수고했어. 고맙고 사랑해.]
부끄럽지만 꼭 안아주면서 이야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