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도마 위에서 샌드위치 햄과 핫도그용 소시지(김밥용으로 자주 사용함), 베이컨을 자른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맵고 단단한 케냐의로칼 보라색 양파를 자르고 담백한 양배추와 고추, 당근, 파를 잘랐다. 냉동고에서 꺼내 놓았던 떡볶이 떡을 자르고양념장으로 고춧가루와 간장, 피시소스, 설탕, 후춧가루, 생강가루, 굵게 간 마늘을 듬뿍 넣어 휘저어 섞어놓는다. 간돼지고기에 후추, 생강, 마늘 가루와 소금을 넣고는 손으로 양념이 잘 섞이도록 쪼물거려 놓았다. 나름 색깔별로 전기프라이팬에 재료들을 담아본다. 밥 대신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라면사리까지 따로 준비해 놓았으니주인장 맘이 흡족하다.
한국에서부터 손님 치르는 것을 좋아했던 나였는데 케냐에서도 코로나 팬데믹 전까지는 그러했다. 어느 해, 울 집에 오셨던 분이 내 요리를 칭찬을 했다, 그의 옆에 있던 남편이 얄밉게 말했다.
"아내는 손님용 요리만 잘합니다."
참으로 헐, 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인정이 되었다.
남편은 나와 식성이 참 다르다. 나는 국이나 찌개 종류와 나물반찬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국은 웬만해서는 안 먹는데 먹게 되면 건더기만 쏙 건져 먹는다. 혈압약을 먹는 터라 나름 염분을 안 먹으려고 한다지만 물기 있는 음식보다는 마른반찬이나 볶음용을 좋아한다. 그러나 케냐에서 멸치와 오징어포, 북어채, 마른 새우, 쥐포와 건오징어는 너무 비싸서 구매할 엄두를 못 낸다.그나마 한국에 가기라도 하면 가지고 나간 이민가방에 거의 먹거리만 챙겨서 케냐로 오게 된다. 특별히 해산물은 냉동고에 넣어 놓았다가 6개월이나 1년까지 아껴가며 먹는다. 생각해 보니 남편 말이 맞긴 하다. 나는 적은 양의 요리보다는 대량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잘하고 좋아한다
부대찌개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자 얼큰한 냄새가 집안으로 퍼져 나간다. 소시지와 베이컨에 간이 이미 짭조름하게 배어 있어서 양념장은 살짝만 뿌려 주었다.한국에서 살 때는 집에서 한 번도 끊여 본 적이 없는 부대찌개를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정부 어느 식당집의 맛을 감히 흉내를 내고 있다.
까만 머리카락의 십 대 학생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서 끓고 있는 부대찌개를 바라보고 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의 태어난 지역도 다양하다. 어느 삼 남매는 광주, 어느 삼 남매는 대구, 어느 아이들은 서울, 울 집 아이들은 인천과 나이로비다. 다들 부모님께서 요리해 주신 스타일과 맛도 다를 테니 이 친구들의 입맛 또한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살아서 그럴까. 우리는 한식이라는 음식 앞에서 만큼은 단단했던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입맛도 그리 깐깐하지 않게 된다. 그것을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겸허한마음이라고 할까.
부대찌개 국물에 라면 사리를 넣고 푸짐하게 저녁을먹은 아이들은 간절한 소원을 마침내 이룬 듯 달콤한 츄파츕스로 입가심을 한다. '다 이룸.' 먹는 것만큼 기쁨이고 행복한 것이 또 있으랴. 학교에서는한식이 그리우면 기숙사 부엌에서 끓인 라면에 밥을 말아먹거나 집에서 가지고 온 쌀로 밥을 해서 김치와 고추장과 김으로 저녁을 먹는다는 아이들이니오늘만큼은 행복이다.
울 아들 또한 대학 1학년 1학기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보내고 있다. 한식을 먹는 날은 1주일에 딱 한 번뿐인데 그날은 일요일 한인교회에서다. 엄마인 나를 위함인지 아들은 한 끼로도 한식은 충분하다고 한다. 어쨌거나 아들은 18살의 대학생이기에 든든하기 그지없으나 바로, 내 눈앞에는어린 남의 자식들이 앉아 있으니 이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더 크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이상스러운 마음과 미묘한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