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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5.토란대를 다듬는 남자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

by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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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이다. 바람이 매서워지고, 아침저녁으로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텃밭에 나가보니 무와 배추는 벌레들에게 뚫려 구멍 투성이였고, 고라니에게 습격당한 서리태는 앙상한 줄기만 남아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밭을 둘러보는데, 옆밭 어르신이 다가오시더니 “토란대 좀 가져가요.” 하신다.

몇 줄기만 주실 줄 알았는데 세상에, 한아름 안겨주신다.


나는 어떻게 먹는지도 몰라 눈만 멀뚱거렸는데, 역시 시골 출신 남편은 토란대를 척척 다듬기 시작했다.

나도 거들어볼까 하다가 양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단순노동엔 약한 편이라 남편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저쪽 밤나무 밑에 밤이 많던데~” 그리고는 슬그머니 도망쳤다.


바람소리도 듣고, 새소리도 들으면서 놀다 보니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제쯤이면 다 끝났겠지?’ 하는 마음으로 텃밭으로 슬금슬금 돌아가 보았다.


그런데 웬걸.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묵묵히 토란대를 다듬고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인데, 남편은 이상하리만큼 그걸 잘한다.


지난번에도 마늘을 심었다가 알이 작게 나와 ‘이걸 언제 다 까나…’ 걱정했는데,

그는 작은 마늘 하나도 남김없이 다 까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인간 승리구나.”


어쩌면 그는 AI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싸일지도 모르겠다.


주부습진에도 꿋꿋한 남편, 다듬은 토란대를 건조기에 말리며,

그는 오늘도 인간 승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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