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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3.엄마의 후라이팬

“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by 봉순이




엄마의 병원 동행 일정으로 며칠간 함께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괴로움이기도 했다.

결혼하고 부모님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2년.

특히 우리 모녀는 고집이 세서, 맞지 않으면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오늘도 엄마의 부엌에 들어가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기름때가 손잡이까지 번진 후라이팬은 바닥이 눌어붙어 더 이상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부엌 환풍기에는 끈적한 찌든때가 켜켜이 쌓여 연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지저분한 꼴을 볼 수가 없어 손을 걷어붙였다.

락스를 뿌리고 수세미로 찌든 때를 박박 문질렀다.

남편도 옆에서 함께 닦았다.

하지만 나는 괜히 남편에게 소리쳤다.

“좀 더 세게 닦아!”

사실은 엄마에게 화가 났는데,그 화살을 엉뚱하게 남편에게 돌린 거였다.


끈적거리는 환풍기를 어느 정도 닦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시커멓게 바닥이 눌러붙은 후라이팬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순간,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안 돼! 그거 버리지 마!”

“아니, 엄마. 이걸로 요리하면 암이 더 생겨! 이제 그만 버려!”

그러자 엄마는 단호히 말했다.

“고등어 구워 먹을 때 딱이야. 버리지 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숨이 ‘후~~’ 하고 나왔다.


‘그래, 새 후라이팬을 사드리면 버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트로 달려가 작고 가벼운 새 후라이팬을 사왔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그 낡은 후라이팬을 버리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짐을 싸서 그냥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엄마 방에서 뭔가를 보았다.


그건, 내가 그려둔 그림 옆에 엄마가 따라 그린 강아지 그림이었다.


900_20251028_092651.jpg 왼쪽은 내가 그린 그림, 오른쪽은 엄마가 따라 그린 그림


“아휴, 너무 귀엽잖아…”


그림을 보는데, 마음이 확 녹아버렸다.

잠이 오지 않던 밤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계시더니, 그날은 정말 피카소가 왔다 간 것 같았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가, 어느새 코끝이 찡해졌다.


“알았어, 엄마. 후라이팬 안 버릴게. 그대신 눌러붙은 건 고등어 구워 먹을 때만 써야 해.”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남은 기름때를 박박 닦았다.

낡은 후라이팬처럼, 우리의 관계도 오래되어 눌어붙은 부분이 많지만 그 안은 여전히 따뜻하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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