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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버틴 시간

‘뱃살 충분’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유머

by 봉순이


6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가슴 복원 수술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은 상담이 끝난 뒤 심각한 표정으로 차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감에 몸이 떨렸다.


'저렇게 심각한 것을 보니 암말고 또다른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자 나는 참지못하고 몰래 차트를 슬쩍 들춰봤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네 글자.


‘뱃살 충분’


순간, 웃음이 터졌다.

가슴 복원은 주로 뱃살을 쓰고, 부족하면 등살까지 끌어다 쓴다고 했다.


나는 ‘재료가 넉넉’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어이없고, 또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온몸을 덮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렸다.


수술 후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뱃살 충분’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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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버거울 때, 꼭 진지한 말만 필요한 건 아니다.

가벼운 웃음 한 방이 무거운 어깨를 내려놓게 해 주고, 때론 어려운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게도 한다.


내 글 하나, 내 그림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짝 들어 올려주는 점프대가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웃기자.


웃음 하나로 견디는 힘을 나도 받았듯, 이제는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

당신의 오늘이 조금 가벼워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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