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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힘

하찮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by haru Dec 05. 2024

유난히도 긴 여름 햇살이었다.  

10월 중순에도 26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를 보고 있자니 가을이 기다려졌다. 

마치 곧 오겠다는 반가운 손님이 연락이 없자 문 앞을 서성거리는 마음처럼.


'올해 단풍, 긴 여름 탓에 절정 찾기 힘들어'

기다리던 손님의 소식은 이렇게 전해졌다. 기후 변화로 인해 몇십 년 뒤엔 단풍 없이 잎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기사도 눈에 들어온다. 잔혹한 기후변화의 주범 중 하나인 내가 형형색색의 단풍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구나 싶었다.

 

변화의 시기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언제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보통의 존재들이다.

너무 주변에 많거나 나무 자주 봐오던 이 '보통'들은 매번 첫 번째 희생량이다.

참새가 그랬고 꿀벌도 그랬다. 출퇴근할 때마다 보던 이름 모를 작은 산을 뒤덮고 있던 나무와 식물들이 멀지 않은 시기에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접하니 인간은 과연 세상에 이로운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잊어 갈 때 즈음, 주변 나무들이 차츰 색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한여름 폭염을 끝까지 버텨낸 나무들이 토해내듯 타버린 빛을 내놓은 거라 생각된 걸까.

'수고했어, 잘 버텨주었구나"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봄이 꽃들의 향연이라면 가을은 나무들의 잔치다. 꽃으로 빛낼 순 없지만 계절의 절반 이상을 비슷한 듯 푸르다 때에 이르면 저마다 자신만의 색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고 사그라진다. 

못생긴 나무도 장성한 나무도 어린 나무도 가을이라 불리는 계절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볼 때면 이 보통의 존재들이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존재감은 떼 지어 피는 한철 벚꽃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러시아워 중 / ipohe14><러시아워 중 / ipohe14>

 

이런저런 핑계도 댈 만 한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도망치치 않는 용기를 가진 보통의 존재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자신만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존재들의 힘


뜨거운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떠나지 않는 녹녹지 않는 지금이지만 군말 없이 자리를 지키는 당신과 나의 삶을 응원한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시기가 반드시 오리라 믿기에.



하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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