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시스템을 이해하면 성공이 보인다.
"올해 채용 계획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담배 연기를 조심스럽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대표가 투자 건 때문에 예민한 거 같아. 아무래도 재무제표 상 전년보다 조금이라도 성장했다고 피칭하고 싶은 모양인데,.. 예산 마련을 위해 비용을 줄여야 하는 이슈가 있어요. 쓸데없는 마케팅 비용은 다 줄이고, 매출에 연동되는 마케팅에만 집중하면 좋겠어. 인사 쪽에서 인건비성 비용 줄일 수 있는 부분들도 같이 봐주세요. 당연히 채용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고..."
10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날씨가 뜨겁다. 인사 팀장의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혀있다. 늦가을의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내 이야기에 당황을 한 것인지.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뜨악하며 땀 흘리는, 딱 그 모습을 내게 보여주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담배를 털어 낸다.
"본부장님, 너무 하세요. 다른 건 몰라도 채용이 되어야 일이 돌아가죠. 지금 직원들 일 많다고 난리인데.. 팔로업 안 되는 업무들 때문에 여기저기 구멍 나고 있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내년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 4분기 숫자 조정하면, 내년 것도 다 틀어지잖아요.."
대한민국 직장의 조직문화가 이렇게 좋아졌다. 내가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인가, 혼잣말을 듣는 것인가를 헷갈릴 정도로 매우 조용하고 나긋하게 짜증을 내고 있다. 감히 나에게.
"김팀. 알아. 힘들겠지만 딱 3개월이야. 내년 1월 2월 중에 바로 채용하도록 합시다. 당분간 복리후생 관련 비용을 가지고 직원들 동기부여 줄 수 있는 가벼운 이벤트 같은 거 고민해 봅시다. 그리고 내년 사업계획 채용 예산, 인건비 예산 비용은 그대로 반영해 주세요. 내가 재무 쪽에 따로 이야기해서 정리할게."
기운 내자는 의미로 어깨를 두드려 주고, 근처 카페에서 제일 비싼 생딸기라테 한 잔을 사서 쥐어 주었다. 인사 팀장은 생과일이 들어간 음료를 참 좋아한다.
보통의 회사는 매년 9월 즈음부터 다음 해 사업 목표를 세우고 달성을 위한 방안들을 고민한다. 대부분 매출과 영업이익에 초점을 두고 4분기 마감 전에 전사 목표, 팀 목표, 개인 목표 등을 정리하는 KPI 나 OKR, MBO와 같은 조직 관리를 위한 방법론을 연구하여 활용 목적에 맞게 적용한다. 예를 들어 내년도 회사 매출 목표가 10억이고 영업이익 목표가 2억이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팀의 역할, 개인의 역할을 구분하여 업무 분장이 된다. 물론 사업적으로 매출을 내는 부서가 있을 것이고, 매출을 내지 못하지만 운영적 지원을 하는 부서가 있기 때문에 역할과 기여도에 대한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한 정량적, 정성적 지표를 적절히 섞어 개인의 성장과 팀의 성장을 통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관리 방안의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지금은 내년도 사업계획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데, 부득이하게 우선순위가 뒤바뀐 상황이 되었다. 항상 회사는 이렇다. 일은 생물처럼 살아 움직인다. 변수는 늘 상수의 가면을 쓰고 앉아 있다. 보통은 이런 것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그때에 갈등과 사건이 벌어진다.
"네? TO 동결이라뇨? 지금 상황을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 같은데,..."
두꺼운 뿔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나를 노려보는 마케팅 팀장.
나는 얘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