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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명패가 우리 집으로 온 날에 쓴 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우리 할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한 새벽에.

귀하디 귀한 물건, 국가유공자 명패가 우리 집으로 왔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6.25에 참전하셨던 국가유공자로, 이제는 현충원 충혼당에 계시는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는 징병제를 추진하는 때가 아니었으나, 할아버진 자원하여 입대를 하셨다고 한다. 


1930년생으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지속됐던 한국 전쟁에 참전하셨던 우리 할아버지...



(이제는 어제가 되어버린 날에)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동생이 오늘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머니를 찾아뵈려고 간 거다. 


마침 6월 29일은 아빠의 생신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갔다. 


그런데 할머니 댁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이 있었다. 


바로 이 국가유공자 명패...



한창 비가 내리는 요즘이다. 


한국 전쟁이 시작됐던 1950년 6월 25일. 


그리고, 


그로부터 72년 후인


2022년 6월 30일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지금처럼 그때도 장마철이었겠지... 


비가 올 때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셨을까? 


어떤 마음을 갖고 계셨을까? 


2019년에 네팔에서 사고가 있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어서 그랬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2015년의 나는 미얀마 마하시 위빠사나 명상센터에서 수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 비구니 분을 만나 뵈었다.


그 비구니 분은 마하시 센터에서 산책을 하실 때 쉐다곤 파고다가 살짝 보이는 지점에서 늘 합장을 하시곤 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수호신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네팔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게 해 줬던 건 나무였지만, 


우리 할아버지 같은 분이 수호신처럼 내 곁을 지키며 나를 살려주신 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실까...? 


지금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새벽 세 시... 


난 빗소리와 아멜리에 OST로 내 마음을 적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https://youtu.be/nJQV1jCM0gk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이 달이 가기 전에 할아버지가 계신 현충원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려고 했었다. 


6월의 마지막 날인 바로 오늘 말이다.


그런데 마침 어제 할머니 댁에서 국가유공자 명패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시점에 EBS 방송에서는 6.25와 관련 있는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해 주었다. 


서울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총알이 빗발치는 한국전쟁의 전장에서 전국 부대를 돌며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한 뮤지션'이라고 한다. 


바로 '올해 93세의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https://www.youtube.com/watch?v=p9_LDOwmHkM&t=194s


아빠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전쟁 중이셨을 때의 에피소드에 관해 말씀을 한창하고 계셨고,


이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도 


난 TV에서 그분이 인터뷰 중에 하신 말씀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재빨리 적어내려갔다. 


92살에 깨달은 건데 난 오래 살았고 

충만감 가득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전 후회가 없어요. 

때가 오면 기꺼이 받아들일 거예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나도 충만감으로 가득한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할머니는 국가유공자 명패뿐 아니라 또 하나의 선물을 내게 건네주셨다. 


박카스 봉지에 담긴 사진들이었다. 


할머니 댁에 오래도록 있었던 사진들이었는데 이제 우리에게 돌려주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젊으셨을 때, 


그리고 동생이 어릴 때의 사진도 있었지만, 주로 나의 유년기 사진들이 거기에 있었다. 


보물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동생과 함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러면서 난 태어난 지 딱 1년이 된, 돌배기 아기인 나와 만나게 되었다. 


음식이 산처럼 쌓여있는 가운데 두 손에 연필을 들고 환히 웃는 나... 


돌잡이 물건들에는 무엇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사진에는 내가 연필 두 자루를 손에 꼭 잡고 있었다. 


때로는 한 손으로 연필을 물고 있기도 하면서... 


그 연필 두 자루는 정말 운명이었던 걸까. 


운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난 지금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는 업을 꾸리며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 나는 몇 살까지 연필을 잡고, 


혹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게 될까? 


몇 년 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


알 길은 없지만, 글을 쓰는 행위가 매우 가치 있고 숭고하다는 믿음만큼은 변함이 없을 테다.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일어났다고 하신 우리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처럼 나도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신념을 지키며 나의 길을 용감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피아니스트, 번스타인처럼 


살아가면서 충만감 가득한 경험을 많이 했으며,


때가 오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노라고 


부디 홀가분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이 새벽에 빗소리와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Yann Tiersen의 Comptine d'un autre été를 들으며 적어본다. 


용맹하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너무나도 그리운 이 새벽에...


할아버지 같은 분이 계셨기에, 건강히 커서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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