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5
7.3
사람들이 기억하기보다 저장하기를 선호하면서 데이터의 양은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쓸만한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중앙정부는 모든 개인의 데이터에 본인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도록 최대한 보호했다. 그러나 저장기간에는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 모든 개인의 데이터는 중앙의 서버에 기록되고 보관 기간은 10년을 주기로 모든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만약 그보다 더 오랜 기간 저장을 하고 싶으면 중앙정부에 요청하여 공익 목적의 데이터 심사기준을 통과하면 공공도서관에 저장할 수 있었다. 윤이는 밤새도록 공공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책과 자료를 보았다. 그가 평소 궁금했던 유전학 관련 연구자료도 찾아보았다.
그가 자료를 보고 있을 때 흰가운을 입은 수염 난 박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윤이는 집중해서 자료를 보고 있느라 그의 옆에 다가 온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수염박사는 윤이 옆에 자리를 앉아서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 오랜만이에요. 여기서 만나다니 참 희한한 일이네요. 범죄 심리학이나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쪽에도 관심이 있었던가요?” 윤이는 자신이 이수형경감의 아이디로 들어와 있으므로 그에게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윤이는 자료를 보던 곳에서 나와서 다른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그에게 말을 시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의 프로필을 눌러봤다. 이 수현 경감이 알고 있는 지인은 맞지만 프로필은 공개되지 않았다. 공공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프로필을 공개하지 않는 사람은 많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그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자신의 아바타를 꾸며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윤이는 나중에 수염이 난 흰 가운의 박사가 누구인지 이 수현 경감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윤이는 거실의 창을 바라보았다. 거실의 창밖은 해가 뜨려고 하늘이 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저렇게 맑은 공기의 새벽하늘이라니.’ 문득 윤이는 이곳에서 계속 살았다면 자신의 모습이 현재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정보와 관련한 일을 하거나 어머니처럼 의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공공 도서관에서 마음대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동안 그의 지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공 도서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특정한 직업이 없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1급 시민이었으므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와 책에 제한이 있었다. 일반적인 정보밖에 얻을 수 없었다. 물론 준호를 만나고 나서는 그의 파트너들이 그가 원하는 자료를 많이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항상 자료가 부족했다. 그는 알고 싶은 것과 배우는 것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그는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그는 그가 받아들이는 것보다 항상 필요한 자료가 부족해서 괴로웠던 것이다. 윤이는 어릴 적 그의 할아버지집 지하에서 보았던 오래된 책들의 한 장 한 장을 모두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료들이 중앙정부가 사용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만든 근간이 되는 방법론에 대한 책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중에 그것을 좀 더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다.
창 밖으로 눈부신 태양이 떠 올라 거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윤이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 이수현 경감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거리의 표지판에 그의 손목시계를 비추었다. 그리고 위치 확인 버튼을 누르자 주변의 지도가 펼쳐지고 윤이의 위치가 녹색으로 표시되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 지도를 더 크게 확대했다. 에어카를 타면 십 분도 안 걸려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는 주택가 골목을 벗어나서 큰길을 향해서 걸어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거나 걸어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윤이는 그보다 거리를 거닐며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감님, 저는 동네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일어나서 제가 없어서 걱정하실까 봐 알려드립니다. 산책을 하고 점심시간 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윤이는 이 수현 경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택가를 지나서 에어카 정거장이 있는 큰길로 들어서자 학교를 가기 위해서 차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윤이는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거기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제3 구역에서는 학생들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모두 나이가 들고 병든 사람들이었다.
그의 앞으로 학생 두 명이 지나가면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 그런 일상을 이야기하는 소리였다. 십 대 초반의 소년 시절 학교에 다니던 때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만약 오늘 형의 집에 가서 형을 만난다면 윤이는 그 친구들에 대해서도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물끄러미 그의 앞으로 오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을 때 에어카가 도착한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의 왼쪽 뺨이 멀리서 오는 에어카의 바람에 살짝 따뜻한 공기를 느꼈다. 윤이는 플랫폼이 복잡해지기 전에 다시 이수현 경감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보다 학생들이 더 많이 플랫폼에 들어와 있었다. 그에게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그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플랫폼을 나와서 주택가로 가는 길로 천천히 걸었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주택가의 고층 아파트 곳곳에서 직장에 가려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보였다. “혹시 윤이 아니야?” 윤이는 아무 생각 없이 길바닥을 보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그를 아는 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1 구역이지만 그가 살던 곳과는 반대편인 이 지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윤이는 그 소리를 마치 꿈에 들은 소리처럼 무시하고 그대로 걸었다. 그때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이 느껴져서 윤이는 깜짝 놀라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김윤.” 그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작은 키의 여자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서있었다. 얼굴을 보니 윤이도 아는 사람이 분명했다. “이재영.” 윤이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이름이 튀어나왔다. “응, 나 재영이 맞아. 윤이 너는 얼굴이 그대로구나. 네가 이 동네에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널 만나다니..”
7.4
제이는 유미에게 동생 윤이에 대해 설명을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미는 요즘 집에 돌아와서도 피곤한지 잠을 자기에 바빠서 그와 대화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유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오늘 오후 일정은 모두 개인화시키겠습니다. 만약 중요한 일이 있으면 메시지를 주시기 바랍니다.” 제이는 오후에 집으로 가서 유미에게 윤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회사 일정을 조정했다. 그리고 유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한 시에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집에 갈 거예요.” 유미는 자고 있는지 즉각 답이 오지 않았다. 제이는 윤이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이 수현 경감과 함께 우리 집에 저녁 여섯 시까지 와.” 그의 메시지에 윤이는 즉각 답장이 왔다. “그렇게 할게요.” 제이는 유미에게 할 이야기를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었다. 유미는 윤이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가 최근 몇 년 동안 윤이를 제3 구역에서 몇 번 만났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그가 이수현 경감과 제3 구역에 윤이를 찾으러 간 몇 년 전의 일부터 다 설명을 해야 했다. 제이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윤이에게 연락이 닿아서 오늘 집에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제이는 우유부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윤이의 일에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그가 요즘 회사 일로 얼마나 바쁜지 일깨워 주듯이 컴퓨터 스크린 여러대에서 그의 승인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중앙정부에서 우리가 제공한 사역 침팬지에 대해서 문의사항이 있다고 대표님과 회의가 가능한지 물어봅니다. 긴급 요청입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확인하고 알려주셔야 한다고 합니다.” 제이는 스크린에 긴급으로 뜨는 메시지를 보고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앙정부의 담당자를 연결시켜주세요.” 잠시 후 스크린에 중앙정부의 식량관리부서 담당자 이준책임이 나왔다. “대표님, 이준책임이라고 합니다. 사역 침팬지에 대해서 몇 가지 급하게 물어보겠습니다.” “네, 한 가지 알아 두셔야 할 것은 우리는 사역 침팬지를 제공했고 정기적인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역 침팬지의 소유 및 고용주는 노동부입니다. 노동부가 사역 침팬지의 상태에 대해서는 가장 최근의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잠시 상대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알고 싶은 것은 사역 침팬지들이 시스템으로 제어되지 않을 수 있는지 여부와 만약 제어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책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회사는 그들을 노동현장에 보내기 전에 1년 동안 교육을 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침팬지의 반정도가 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시스템의 지시에 따라 자율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물론 생산성이 모니터링되어 재교육이 필요한 침팬지는 저희 쪽으로 보내져서 재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사역 침팬지가 시스템에 순응하여 일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이탈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 말은 제어되지 않는 침팬지는 이제까지 없었다는 겁니다. 만약 그런 침팬지가 생기면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발견되어 노동부에서 우리 쪽에 반품을 요청했을 겁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저희 쪽에서는 아직까지 노동부로부터 우리가 제공한 사역 침팬지의 반품이나 불량에 대해 통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침팬지들의 품질에 대해서 호미니드에서 평생 보장 하는 것 맞겠지요?” 중앙정부의 관계자는 제이의 설명을 다 들은 다음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다시 제이에게 물었다. “사역 침팬지로 가장 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우리 회사의 침팬지는 평생 보증하는 조건으로 공급합니다. 문제가 되는 침팬지는 새로운 침팬지로 언제나 교환도 가능합니다. 단, 우리가 애초에 약속한 시스템에 맞는 일들을 시킬 때가 아닌 경우에는 예외가 됩니다. 아무리 사역침팬지라고 해도 약속되지 않은 시스템으로 일을 시키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노동부에서 구입한 침팬지에 대해서 우리 식량관리부에서는 그동안 아무 관여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도 사역 침팬지가 필요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만약 현재 사역침팬지를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면 기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분야가 다르면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어업에 투입된 침팬지를 광업에 넣어 땅속에서 일하게 하는 극단적인 경우라고 하면 안 해봤지만 환경이 많이 달라서 최소 육 개월은 걸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겠군요.” “네, 맞습니다. 길게는 유전자 구성부터 다시 해서 새로운 종을 만들어 교육까지 해서 공급하는데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다시 자세한 내용을 준비해서 정식으로 회의를 요청드리겠습니다. 시간을 내줘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사역 침팬지에 대해서 중앙정부의 식량관리부서의 책임자가 묻는다는 것은 준호가 중앙정부에 협상을 제안 한 여파일 가능성이 있었다. 준호는 제4 구역의 식량과 자원의 공급망을 제어하여 중앙정부를 협박하고 있다. 지금 중앙정부는 사역침팬지를 자신들의 시스템으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 제이가 잠시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그의 손목에서 유미의 호출이 울렸다. 제이는 깜짝 놀라서 유미의 호출을 받았다. “ 한시에 집에 온다고 하고 아직도 회사에 있나 봐요. 늦는다는 연락도 없고. 지금 몇 시인 줄 아세요? 한시가 넘었어요.” 제이는 중앙정부와의 통화 이후에 생각에 잠겨있느라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간 줄 몰랐다. 그는 한번 생각에 빠지면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는 버릇이 있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몰랐어요. 지금 출발할게요. 미안해요.” 제이의 머릿속에는 준호의 계획에 대해서 중앙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혼자만의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제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미는 아직 피곤함이 덜 풀린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서 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들어 유미는 해저도시의 일 때문에 휴가를 반납하고 연속으로 근무하는 일이 많아졌었다. 제이는 유미가 승화와 함께 준호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유미는 제이가 그동안 이수현경감과 함께 윤이를 몇 번 만났다는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유미는 제이가 위험할 수도 있는 제3 구역까지 갔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제3 구역에 당신이 몇 번 갔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네요. 거긴 모든 게 불완전하고 지저분할 텐데 어떻게 견뎠어요?” “별로.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아서 있을만했어요.” “근데 이수현경감님과 왜 같이 다니게 된 거예요?” “아, 그건 준호를 조사하는 담당 자니까 처음에 같이 다니게 되었어요. 또 우리 아버지 하고도 잘 아는 분이고. 당신은 바빠서 이미 오래전에 신경을 끊은 일이겠지만 준호를 찾는 일은 계속되고 있었거든요.” 유미는 제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와 마찬가지로 준호를 조사하다가 준호와 연결되어 이제는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윤이 씨가 온다는 거죠? 제가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그냥 우리 집이 보고 싶데요. 어릴 때 여기서 같이 많이 놀았거든요. 특별히 준비할 거 없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이수현 경감도 온다고 했어요.”
7.5
윤이는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재영을 찾아보았다. 그녀의 프로필에는 언어학자라고 나와있었다. 어릴 적 어렴풋이 재영이와 마지막으로 봤던 날이 떠올랐다. 재영은 부모님들이 해외에 나가게 되어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윤이와는 기어 다닐 때부터 같은 유아원을 다니고 영재 교육도 같이 받던 친구였다. 그 후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길에서 보니 이름도 얼굴도 모두 떠올랐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프로필에 생물학 박사겸 언어학박사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가 쓴 논문들도 많아서 몇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 리스트가 쭉 나열되었다. 윤이는 만약 재영이가 자신을 검색해 보면 자신의 프로필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윤이의 프로필은 간단했다. 가족들에 대한 관계와 중학교까지의 학력 외에는 프로필이 없었다. 아까 재영이는 윤이에게 회사를 가는 중이냐고 집은 어디냐고 물었지만 윤이는 지금 말하기 곤란하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자리를 피했다. 아마도 재영이는 해외에서 살다가 와서 윤이의 행방불명 상태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윤이의 학교 친구들 대부분은 그의 행방불명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이는 재영의 논문 중에서 ‘인간의 언어 본능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에 관심이 가서 그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이 수현 경감은 어제 먹은 약 때문인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자고 났더니 몸이 한결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 컨디션이면 윤이를 제3 구역에 데려다주고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얼 읽고 있었어요?” 이 수현 경감이 윤이가 보던 스크린을 보면서 물었다. “아, 오늘 아침 뉴스들을 읽던 중입니다. 여기는 여러 가지 정보를 모두 들어가 보고 책도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요. 경감님 덕분에 최신 정보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집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무 제한 없이 여러 가지 정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그동안 읽고 싶던 책이나 자료 있으면 많이 찾아보세요.” “오전에 산책하다가 친구를 우연히 만났어요. 어릴 적 학교에 같이 다녔던 친구인데 단번에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윤이는 이수현경감에게 길에서 재영이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가 아는 척을 해서 놀랐겠네요. 별 다른 일은 없었나요?” “갑자기 저를 알아봐서 제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다시 만나자고 하는 걸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윤이는 정말 난처한 표정으로 이수현 경감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나요? 친구를 만나는 게 일반적인 생활에 필요한 일이죠. 설마 그런 일을 잊은 것은 아니겠죠? 불편해 할거 없어요.” “불편한 건 아니지만 어색할 것 같아요.” 재영은 윤이와 헤어지면서 그들이 마주친 공원에서 저녁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재영은 윤이가 같은 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고 집을 오가는 길에 만나고 싶어 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제이네 집에 가는 것은 혼자 가도록 하세요. 나는 아무래도 충분히 쉬어야 몸이 빨리 회복될 거 같아요. 내가 제이에게 데리러 오라고 할게요.” “ 아닙니다. 구경 삼아서 에어카를 타고 가도 됩니다. 가는 길에 친구를 잠깐 만나고 가면 돼요. 친구와 주택단지 입구에 공원에서 5시에 보기로 했습니다. 근처에 사는 것 같아요.” “괜찮은 생각이에요. 돌아다니다 보면 아마도 제3 구역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거예요. 제이한테는 안부 전해주시고요.”
이 수현경감의 말은 맞았다. 윤이는 벌써부터 제3 구역에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윤이는 그가 어릴 적 제1 구역에 살던 때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1 구역은 획일화된 건물과 도로 그리고 감시하는 카메라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는 답답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윤이의 착각이었다. 십오 년 동안 사회는 많이 변해서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예술적인 건물들과 자연의 조화가 어우러진 단지들이 많이 생겨있었다. 윤이는 이제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던 과거의 세계에 대한 기억을 부수고 현재의 세계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