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겨울이 오면 우리 집에선 슬리퍼가 필수다.
털이 보송보송한 수면양말도 좋다.
그도 없다면 그저 두툼한 양말이라도.
맨발만 아니라면 그 어느 것도 오케이.
아무리 열이 많은 체질이라 해도 벌거벗은 발바닥은 아니다.
여름엔 널찍해서 좋다 하던, 시원하게 뚫린 마룻바닥은 겨울이 되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세련되어 만족스러워하던 무채색의 커다란 타일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온몸을 시리게 한다. 그렇다고 카펫을 깔자니 먼지와 얼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집안 온도를 한껏 올려봤자 공기만 답답하고 건조해질 뿐 갈 곳 잃은 발바닥에 온기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미국식 집에 갖는 가장 큰 불만이다.
온돌이 없다는 것.
뜨끈한 방바닥을 느낄 수 없다는 것.
한국을 떠나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새삼 깨달을 것이다. '온돌'이 주는 엄청난 이점을.
'온돌'이란 말이 주는 훈훈함을.
'온돌'이 겨울철 일상에 가져다주는 깊은 따스함을 말이다. 겨울철 안방구석에서 뜨끈하게 지지는 느낌이 얼마나 평화롭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그것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니 경험한 후 이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나처럼 13년째 외국 생활을 하면서 온돌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엉덩이가 따뜻한 행복을 과연 미국 사람들도 알까?
발바닥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진다는 걸 알까? 뜨끈한 방바닥 구석에 누워 땀을 흘리며 한숨 자고 나면 올라오던 몸살 기운까지 씻은 듯 사라지곤 하는 놀라운 효력을 알까? 알려주고 싶다. 그 맛과 멋을. 그 뜨끈함의 가치를.
'따뜻함'도 아니고 '뜨거움'도 아닌 '뜨끈함'의 제맛을.
물론 미국에도 안락함을 주는 그들만의 양식이 있다.
장작을 집어넣어 활활 불을 피우는 벽난로와 그 앞에 깔아놓는 러그, 흔들의자에 놓인 퀼트 담요 등의 풍경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 둘러앉아 핫코코아를 마시며 트리 밑에 놓인 선물을 풀어보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가 또는 내가 갖는 외국 집에 대한 환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집안에 난로를 땐다는 건, 집안에 군불을 피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때때로 온 집안이 연기와 불꽃에 휩싸일 것을 각오해야 한다.
불이 날 뻔 한 아찔한 경험을 한 후 결국 난로 구멍을 막아버린 수많은 이웃들을 나는 알고 있다. 또 불을 피워봤자 벽난로 근방만 훈훈하다는 것도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나 역시 이 집에 이사 올 때 원래 있던 자그마한 벽난로를 없애버리고 들어왔다. 한마디로 집 밖의 부엌에 아궁이에 불을 때고 그 불이 돌을 데워 방바닥을 뜨끈하게 하는 온돌이 최고라는 말이다.
고백하자면 온돌만 알고 살았던 시절의 나 역시 '벽난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네 자매는 전쟁에 나간 아빠로부터 온 편지를 읽기 위해 벽난로 앞에 모인다. 엄마는 흔들의자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자매들은 그 엄마 곁에 기대어 앉아 다 함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나눈다. 또한 [빨강머리 앤]에서 길버트는 앤에게 이런 청혼을 한다.
"앤, 나에게는 꿈이 있어. 나는 어떤 집을 꿈꾸고 있지. 그 집에는 벽난로가 있어. 그 앞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고, 친구의 발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네가 있는..."
이토록 로맨틱한 청혼이라니. 게다가 길버트다. 갈색 눈동자와 갈색 곱슬머리의 길버트가 앤에게 '벽난로가 있는 집'을 들먹이며 청혼한다. 완벽하다. 이 청혼의 멘트에 '온돌이 깔린 집'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집에는 온돌이 깔려있고...' 이건 아니다. 벽난로와 러그가 깔린 집만이 청혼을 완성한다.
그러나 환상은 끝났고 지금 나는 다시 '온돌'을 꿈꾼다. 어쩌면 나는 늘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좇으며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만은 진지하게 말하겠다.
침대 속에 전기장판을 깔거나 뜨거운 물주머니를 집어넣고서야 그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침대 말고 바닥에 요를 깔고 늘어지게 한숨 낮잠을 자고 싶다고. 엉덩이가 따뜻하고 발바닥이 뜨끈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고. 그렇게 오순도순 앉아 군고구마를 까먹고 가래떡을 구워 먹던 겨울의 따스함을 기억하고 싶다고 말이다.
벽난로고 길버트고 청혼이고 나발이고 그보다는 따뜻한 엉덩이를 택하겠다. 역시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촌놈이고 한국 사람이다.
충청도 공주의 한옥에서 자란 어린 수진이는 결혼 후에 미국에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수진이가 꿈꾸는 온돌이 따끈한 꿈을 꾸는 촌놈 수진이에게 그리움으로 가닿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