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자연이라

by 캐리소



계절은 피부가 가장 먼저 느낀다.

더운 여름에 덥다고 추운 겨울에 춥다고 하는데 누구는 사람이 간사하다고 한다.

피부가 느껴지는 대로 느끼는 게 왜 간사한 일일까?

계절 안에서 말하는 감정의 오르내림을 간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지금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새도 없이 벌써 마음은 겨울의 길목에 가깝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스며있는 건조가 서로 만나 바스락거린다.

내 앞으로 당도한 계절이 피부를 통해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은 심연으로 들어와 덮인 의식을 들춘다.



여기까지 쓰고 소로우를 펼치니,

소로우는 귀뚜라미는 이 세상, 이 빈약한 평범한 세상으로 생각이라는 물품을 수입한다. 주)라고 썼다.

아직 귀뚜라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조만간 찾아올 이 계절의 여행객에게 반갑게 인사라도 건네야겠다.


그런데 계절 앞에서 덮인 의식, 생각이라는 녀석은 과거 이 계절에 내가 느꼈던 다정한 기억만을 재생산하는가 보다.

낙엽이 뒹굴던 철길이며, 강바람이 일으키는 공기며, 살아계실 때 삶의 안온한 배경이던 나의 아버지.

낙엽과 강바람과 아버지가 하나의 연결로 자동재생된다.


말없는 아버지에게서 전해지던 사랑과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하던 공기.

그 마음을 손녀들에게 쏟아부어주시던 세심함이 가을이면 번뜩이며 내게 달려든다.



부모님이 마지막을 보낸 양수리.


봄이면 엄마가,

가을이면 아버지가,

오십이 넘어 육십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에 여지없이 찾아온다.


아마 내가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도 엄마 아버지는 예전 모습 그대로 떠오를 것이다.


애도란 기분을 풀기 위해, 그리고 소망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고통에 말을 거는 일이죠.

- 슬픔 이후의 슬픔, 호프 에덜먼.


나의 애도는 어떤 기분을 풀기 위해 오는가?

그리움, 회한, 그리움, 슬픔, 상실감과 그리움.

결국 징검다리처럼 디디고야 말 그리움 때문인 걸로.



자연과 접하며 살았던 경험이 별로 없어서 내게 자연은 그냥 원래 있는 어떤 배경일뿐이었다.

나와는 동떨어진 배경.

그런데 부모님을 떠나보내고는 자연의 본래적인 성질이 그분들을 자동적으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내가 소멸할 때까지 보일 계절이 그렇고.

순환하는 자연이 그리움을 자연스럽게 소환하고.

그분들이 소천하신 날의 날씨와 분위기와 감각이 내 세포에 새겨짐이 그렇고.

부모님을 둘러싸고 있던 산, 강, 숲, 공원이 그렇고.

책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자연의 목소리가 그렇고.


결국은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자연이라

본래적으로 자연과 하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이 그렇고.



주) 소로의 일기 전성기편, 헨리데이비드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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