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를 기반으로 키우는 파이

- 사랑이야.

by 캐리소

배고프다고 서둘러 식당을 찾던 남편이 두부마을이라는 상호가 붙은 가게에 차를 댄다.

두부김치, 두부맛탕, 두부조림, 두부강정.


식당에서 직접 만든 두부 반찬을 이모님이 내어 온다.

난 비지찌개 남편은 청국장을 고르고 난 후 두부 접시에 젓가락질이 바쁘다.

식사를 끝내고 차 한 잔 손에 들고 차에 오른다.


"외식하면 남기는 음식이 아까워서 과식하게 돼. 외식 줄이자.

당신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다가 이대로 잠들면 배가 두리뭉실 장난 아니겠는데?"

이미 나온 배를 건너다보며 남편에게 말한다.


집에 돌아온 후 거실 한가운데 가로질러 놓인 소파 뒤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파에 꽂꽂이 앉아 티브이를 보던 남편의 동그란 뒤통수가 점점 미끄러진다.

급기야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처럼 꼴까닥 사라진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이것 보라고, 내 이럴 줄 알았다! 고 잔소리한다.

"당신 몸은 당신이,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게."

음냐음냐 자면서도 남편은 대답을 건너뛰지 않는다.


'아오, 얄미워.'




우리 큰딸 폰에 뜨는 내 번호.

'엄마'도 아니고 '어무니'도 아닌 '잔소리 대마왕'이라는 글자가 뜬다.

큰손자가 그걸 보고 히히 웃는다.

"울 엄마도 잔소리 대마왕인데 할머니도 똑같네."

내가 잔소리 대마왕?

하고 싶은 잔소리 십 분의 일도 안 했는데?





조던 피터슨은 '질서 너머'에서 '좋은 해결책은 되풀이되어야 하며 그건 다음 달, 내년, 심지어 10년 후나 100년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했다. 아이들이 내게 들은 이야기, 그들의 표현에 '잔소리'라고 불리는 것들이 '좋은 해결책일까?' 하는 고민은 내 말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상고하게 한다.


여러 가지 해결책 중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잔소리다.


나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고 잔소리로 걸러지더라도 가장 나중에 남는 마음은 언젠가 아이들에게 발견될 것이다.

자신들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마음, 소중함의 가치를 직접 건네받은 기억이 없더라도 삶의 궤적으로 남긴 유산을 얻게 될 것이다.


잔소리를 통해서.


고구마밭을 지나다가 마구 헝클어진 잎사귀와 줄기를 보았다. 생은 고구마를 키우는 농부의 모습을 닮았다. 고구마를 손에 쥐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엉겅퀴 같은 잎사귀와 줄기다. 잔소리는 사랑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잎사귀와 줄기다.


적절한 방법으로 전해지는 잔소리는 고구마라는 열매를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거름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대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일환으로 잔소리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잔소리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거봐라, 하고 싶다.

'잔소리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잖니. 이는 관계를 강화하고 서로 간의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잖아.'

내 마음의 소리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일갈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다 표현하지 않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향하는 마음의 소리를 잠재우고 그 에너지를 내게로 가져온다.


잔소리의 밧줄을 잡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관심 있고 너의 안전과 안녕이 내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달할 수 없다.

할머니이기도 하고 엄마, 아내이기도 한 나는 스스로 잔소리를 차단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잔소리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표현되고,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하이데거 양반도 잔소리의 건강한 이면을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아, 그러니 하이데거 양반에게 기대어 내 잔소리의 퀄리티를 더 높여봐야겠다.

참새가 될지언정 잔소리를 맹목적으로 쏘아대는 앵무새가 되지는 않겠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어느 정도의 잔소리를 기반으로 사랑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 1927년에 출간된 철학서로, 20세기 존재론과 현상학에 큰 영향을 미친 하이데거의 저서.

Image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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