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신뢰를 만드는 일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믿음’이라!!!
아침에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패션 유통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지인의 전화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배운 사람(?)으로서 실천도 할 겸, 핑계 삼아 시간을 다투지 않는 모임이나 만남은 자제도 할 겸, 이래저래 스스로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자청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자나 카톡, 전화가 걸려 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 지인의 말인즉슨 갑자기 회사에서 임원 급여를 30%만큼 삭감하겠다는 통보를 받아서 우울하다며 위로해 달라는 전화였다. 사회적 아픔에 동참하자는 명분도 없고, 국민 세금을 아끼겠다는 참된 고위직 국가공무원들의 모범도 아니고 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로만 위로를 하고는 곧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맛있는 밥을 사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속한 산업에서는 최근까지 기업에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제대로 만들어 시행했던 적은 1997년 IMF 환란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두 번이었다. 대기업에서의 비상경영 계획은 IMF를 겪고 난 이후에는 조금만 년간 목표 달성이 위협을 받을라 치면 바로 비용절감 방안과 부진 매출 돌파를 위한 비상경영 계획을 수립한다. 왜냐하면 그 회사를 믿고 투자해준 많은 주주들과 회사에 대해 임직원이 상호 신뢰를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 때문이다.
2015년 메르스가 한창 유행할 때, 30년 넘게 직장 생활한 어느 선배가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오월 봄날에 위로차 대기업 계열 유통기업에 임원으로 있는 선배에게 위로차 물었다.
“메르스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힘들긴 뭘, 내가 입사하고 한 번도 회사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어. 또 애써봐야지”
그러고 보니 나도 입사 이래로 회사가 어렵고 위기가 아닌 적이 거의 없었다. 매년 상반기만 지나면 미달성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상 경영계획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영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 발표하고, 또 그 전략들을 세밀하게 현장에서 실천해 나가곤 했다. 어떤 때는 11월에 새해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새해를 맞았는데 1월 한 달 지나고 바로 위기극복을 위한 새로운 비상경영 계획을 재 수립하고 매출 증대와 비용 절감을 실천하기 위해 힘든 시기를 보냈던 적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전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2014년 세월호 사건 때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던 2015년 메르스 사태 때가 비상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했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대로 된 비상경영 계획’이란 회사의 사업 구조조정과 인원감축, 임금 삭감을 포함하는 비상경영계획을 말한다. 그런 기준이라면 1997년 IMF와 2008년 이금 융위기 때가 제대로 된 비상경영 계획의 수립이었다. 그 외에 2014년과 연이어 2015년이 두 번째 비상경영 계획에 가까웠다. 물론 이때는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은 포함하지 않은 매출 증대를 위한 아이디어 개발과 경비절감에 대한 것이 주류였다.
지금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세상이 많이 변했고 국가나 기업의 위상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또한 기업에 종사하는 구성원들도 유사 이래로 가장 훌륭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기업경영 환경도 모든 것이 변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 전술을 수립함에 있어 그 대상인 산업 현장, 소비자 및 조직 구성원들과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하게 우선순위에 놓고 고려해야 할 문제는 ‘상호 간의 신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시장과 소비자, 임직원들 상호 간의 신뢰 즉, 믿음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IMF 때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난 후, 국난 극복이 취미(?)인 우리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이란 창의적인 솔루션(도서 화폐전쟁에서도 소개)을 통해, 그동안 IMF를 경험했던 많은 나라들 중에서는 유례가 없게 일 년 만에 속성으로 졸업을 했다. 문제는 그 이후로 기존의 회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생각이 확연하게 변했다. 회사와 나와의 한 가족개념, 믿고 일할 수 있는 평생직장 개념, 그리고 회사를 위한 희생, 헌신 등의 개념은 기업 현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회사와 나 사이에서 서로 공평하고 투명하게 GIVE&TAKE 관계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서로가 프로페셔널해질 필요가 있었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Good company라면 사회적 책임은 논외로 할 만큼의 비상상황일지라도 사업구조조정을 통한 자구노력 중에서도 최소한, 인원감축만큼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 간에 있어서나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한 팩트다. 세계에서 단 한 나라, 코로나 19 사태에서 사재기가 없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전만 보더라도 북한의 미사일 위기가 고조했을 때라던지, 각종 사태 때 우리나라도 라면, 쌀, 생수, 분유 등 사재기를 한다고 각종 매스컴에서 오히려 더 부추기고 난리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코로나 19 사태에서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면 오히려 그때가 일부 언론의 과장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존경스럽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메르스 때와 달리 일사불란하고 질병관리본부의 치열한 대응 과정과 투명한 정보공개에 따른 정부와 국민 사이에 생겨난 굳건한 믿음, 즉 상호 신뢰에 기인한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랑과 믿음과 소망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