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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6. 2024

오늘 : 끼니

2024. 5. 26.

1.

가파도에 혼자 살면서 매표소 근무를 하고 있으니, 주민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이 끼니다.

"밥은 어떻게 먹어?"

"아침은 먹고 다니는가?"

"아이고, 혼자서 밥 해 먹느라 힘들겠네."

"김치 좀 갖다 줄까?"


이에 응하는 나의 대답은, 저 밥 잘합니다. 국 찌개 잘 끓입니다. 요리도 잘하고요. 주민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내는지 의아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파도에서는 남자 혼자 밥 지어먹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고, 있어도 잘 못 먹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내가 있는 일산에 가면 밥을 스스로 하거나 차려 먹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일어난 아내가 식사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많은 끼니는 사 먹었고. 가파도에 내려오니 상황이 바뀌었다. 아내도 없고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밥을 사 먹을 식당도 없다. 그러니 힘들어도 알아서 혼자서 할밖에.


2.

매표소에 근무하니 점심을 사 먹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홀로 근무 중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 30분 안에 해결해야 하니 핫도그나 김밥 등 간편식으로 그야말로 때우고 있다. (간혹 영진이네나 일찌 누나가 같이 먹자고 점심 도시락을 싸오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피곤하여 저녁이라도 사 먹고 싶은 날도 있지만, 4시면 문을 닫는 식당뿐이라 사 먹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서 대충 밥을 차려 먹거나 간식거리로 해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특히 진을 빼고 일했던 4월 축제 기간에는 정말 밥 지어먹기가 너무도 힘들고 싫었다. 억지로 차려 먹더라도 밥에 국이나 찌개를 후딱 말아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먹는 거를 그리 좋아하는 나였지만, 피곤 앞에서는 먹는 거고 뭐고 무조건 쉬고 싶었다. 그럴 때 주변에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면 얼씨구나 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만세를 부르고 가담했다.

3.

이제 청보리 축제도 끝나고, 매표소 생활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관광객도 반 이상 줄었고 발권 업무가 많지도 않다. 매일이 평온한 일상이다. 그에 따라 내 일상도 정상괘도를 그려야 한다. 그런데 이게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밥 짓고 국이나 찌개 끓이고 반찬 공수해 소박하게나마 잘 차려 먹었는데, 이제 밥 짓는 것도 귀찮고 국이나 찌개 해 먹는 것도 귀찮다. 더위를 먹는 것도 아닌데,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속으로 두 끼로 줄여볼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아침은 걸러야겠다 (근사한 말로 간헐적 단식을)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마음 내키는 데로 들쑥날쑥이다.


아, 밥 먹는 것의 거룩함이여, 절박함이여, 곤란함이여, 피곤함이여. 

나는 오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면서 

아침은 남은 김치찌개에 밥 말아먹고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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