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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29. 2024

오늘 :  다시 가파도로

2024. 7. 29.

1.

이틀동안 풍랑과 무더위만 대피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나흘이나 밖에서 자고 - 모슬포호텔에서 연박으로 지냈다 - 주변 맛집에서 식사하고 하루는 동쪽으로 돌고, 하루는 서쪽으로 돌고, 하루는 북쪽으로 갔다 왔다하며 관광했다. 언젠 배가 뜰지 모르니 모슬포에 머물면서 피서를 한 셈이다. 그 긴 시간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압축적으로 다녀온 곳과 맛있는 곳만 정리하자.


2.

7월 24일 수요일, 가파도에서 막배로 나옴. 블루오션 봉윤이형과 아는 동생과 모슬포에 있는 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집에서 저녁식사(?)와 호텔 근처 오빠닭(오븐에 빠진 닭)에서 치맥 후 만취해서 귀호텔. 씻고 곯아떨어짐

저, 자약(공자의 약속)이란 술이 독한데다가 섞어 마시는 바람에 그만 취하고 말았다.

3.

7월 25일 목요일. 봉윤이형은 후배를 배웅하러 제주공항으로 가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때쯤 상봉하여 알뜨르 비행장을 가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가미가제 비행장으로 사용된 흔적들을 보며 역사교육. 동쪽으로 가다가 보리비빔밥 맛집에 들러 감탄하며 점심식사. 커피명소 소색체본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파도멍을 때렸다.

잘 생긴 블루오션의 봉윤이형

동쪽으로 더 달려가 박수기정(깨끗한 샘물을 뜻하는 박수, 절벽으로 뜻하는 기정의 합성어.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란 뜻)에 들러 감탄한다. 더 깊숙이 들어가 큰코지에 있는 진황등대도 보고 명물인 금강산 미니어처(봉윤이형의 작명)를 보면서 부서지는 파도를 감상했다. 더 동쪽으로 달리니 예래동(사자가 오는 마을이란 뜻)에 있는 논짓물(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도 구경한다. 봉윤이형은 지역 명소 안내와 운전기사 역할을 톡톡하게 한다. (형이 아니었다면 결코 오지 못했을 곳이다. 정말 땡큐 베리 감사!!!) 마지막으로 다시 모슬포로 돌아오는 길에 시원한 조명물(용천수가 샘솟아 흐르는)에 발을 담그니 10초도 못되어 발이 얼어버릴 듯하다. (옛 조상들이 피서를 하며 탁족을 했던 이유를 알겠다.) 모슬포에 들어와 복날음식을 먹고 잠이 든다.

4.

7월 26일 금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를 산책(?)하다가 더워서 급히 호텔로 돌아온다. 봉윤이형과는 각가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지내고 있다. 점심때쯤 만나 오일장을 구경한다. 모슬포는 매월 1, 6자가 들어간 날에 장이 선다.) 오일장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인 오일장중국집에 들러 나는 간짜장 곱빼기를 형은 냉우동을 시켰다. 양이 푸짐하여 굳이 곱빼기를 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맛은 최고! 봉윤이형을 따라다니다 보니 주변 맛집을 저절로 알게 된다. (나중에 지인들이 오면 소개해 줘야지)

점심을 든든히 먹고 이번에는 서쪽으로 달려 제주 고산리 유적 박물관에 간다.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나도 지나치기만 했을 뿐 들르지 않았는데, 봉윤이형 덕분에 방문하게 되었다.) 고산리 유적지는 구석기와 신석기를 잇는 중요한 유적들이 출토된 것이다. 유적을 안내하시는 분을 보니 낯이 익다. 가파초에 방문하여 제주의 유적들을 설명하는 특별교사를 했다고 한다. 아하,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나를 가파도 매표소 직원이라 소개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서쪽으로 더 가다가 돌고래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설촌(신도2리)의 해안가에서 부서지는 파도의 장관을 감상한다. 내일 배가 뜨기는 글렀구나. 파도가 이리 높게 치니.

다시 모슬포로 돌아와 더위에 지친 몸에 돼지갈비를 넣어준다. 오늘은 술은 자제 모드!

5.

7월 27일 토요일. 아침배를 확인하니 하루 종일 풍랑으로 결항이다. 오늘은 이중섭 미술관에 가자고 조른다. 제주도에 올 때마다 방문하는 곳인데, 제주도에 온 지 8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못 가봤다. 이중섭의 작품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기념품 몇 개를 산다.

돌아오는 길에 봉윤이형은 날도 더운데 제주 1100 고지에 오르자고 한다.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1100 고지를 올라가는데, 구름이 앞을 가린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니 날씨가 선선하다. 람사스 습지로 지정된 생태습지를 돌며 태곳적 신비를 경험한 듯하다. 제주도는 존재만으로 소중한 장소다.

돌아오는 길에 단산을 감상한다. 뫼산자로 되어 있는 단산은 추사 김정희의 말년 추사체를 떠오르게 한다. 고진숙 씨가 <신비의 섬 제주 유산>에 써놓은 것처럼. 봉윤이형은 호텔 말고도 차박을 할 만한 곳이 제주에 많다면서 다음에는 차박을 한 번 해보자고 차를 몰고 인적인 드문 해안가 언덕에 오른다. 아, 이렇게 좋은 곳이! 바다 건너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모슬포호텔로 돌아와 근처 갈칫국의 명소 성신식당에서 갈칫국에 소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6.

7월 28일 일요일. 아침에 운항시간을 확인하니 오전은 풍랑주의보로 배가 뜨지 않고, 오후는 미정이라고 한다. 운진항에 비상대기하며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빵을 좀 구매하고 갖다 준다. 오후에도 배가 뜨지 않을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운진항에서 영상으로 동녘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어제저녁에 내가 쓴 기도문을 후배 원석이가 낭독을 하는데 기분이 묘하다. 예배를 마치고 152번 직행버스를 타고 제주버스터미널까지 버스 여행을 하기로 한다. (봉윤이형은 오늘 형수가 제주도로 온다고 하여 마중하러 나갔다. 오늘은 각자 놀기로!) 버스를 타고 창밖을 구경하며, 시원한 버스 안에서 졸며 제주공항을 지나 제주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의 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냉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배가 고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장 간단한 음식을 파는 중국집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인연인지, 가파도 청보리 펜션에서 일하는 형님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엉겁결에 그분 옆에 앉아 그분이 먹는 막장국밥을 먹고, 그분의 안내를 받으며 동문시장도 구경하고, 도넛과 커피 맛집에 들러 빵과 커피도 얻어먹었다. (세상이 이런 일이!) 원래 해안일주버스를 타고 해안가를 돌아볼까 생각했지만, 시장구경을 하니 시간이 많이 지났고 덥기도 해서 151번 버스를 같이 타고 모슬포로 돌아왔다.

예약해 놓은 모슬포 호텔 룸에 짐을 다시 풀고, 가까운 밥집에 가서 백반을 시켜 먹고 들어와 자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가파도에서 나오셨습니까?" 가파도 이장님이다. "네, 풍랑을 피해서." "아, 길거리에서 비슷하게 생긴 분이 보이길래 혹시나 해서 전화했습니다." "저, 맞습니다." "나오세요. 맥주나 한 잔 해요." 근처 생맥주 집에 들러 노가리에 생맥주 몇 잔을 마시며 가파도 이야기를 한다.

"내일은 배 뜨겠죠?" "당연히 뜰 겁니다." "다행이네. 이틀만 쉬려다가 나흘이나 쉬었습니다." "돈 많이 썼겠네요." "네 벌지는 못하고 쓰기만 합니다." "그럴 때도 있지요." "네, 그렇네요."

7.

7월 29일 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선다. 오늘은 날도 화창하고, 날씨를 살펴보니 배 뜰 확률 100%. 드디어 가파도로 돌아가는구나. 운진항에 들러 직원들께 인사를 하고 표를 발급받아 입도한다. 5일 만에 나타나니 가파도를 나가려는 주민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도 덩달이 웃으며 인사한다. 아, 가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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