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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Sep 30. 2024

책 :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2024. 9. 30.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희망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을 읽는다.(10쪽)

- <책머리에> 중에서




1.

책에 대한 책을 읽을 때에는 이중적 감정에 휩싸인다. 내가 읽은 책들을 저자가 읽고 있을 때의 친밀감과 내가 거의 읽지 않은 책을 저자가 읽고 있을 때의 경이감. 진은영은 후자에 속한다.

책을 읽을 때는 우선 목차를 보는데, 내가 거의 읽지 않은 책을 읽을 때에는 살짝 긴장한다. 이때의 긴장은 낯선 곳을 여행할 때의 긴장과 비슷하다. 이 책의 저자는 나를 어느 곳으로 인도할까, 거기서 나는 무슨 내면 풍경을 읽을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진은영이 선택한 저자들은 책 제목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화는 세상을 등지고 다른 곳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화한 세상이지만 냉철하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살만한 이유를 찾아 치열하게 살아낸다.

그리하여 나는 버지니아 울프를 다시 보게 되고, 모리스 블랑쇼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고, 처음으로 러시아 국민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를, 실비아 플라스를, 에밀리 디킨슨을, 할머니 시인 바스와바 쉼보르스카를 알게 된다. 영화로 보았던 <페터슨>의 원작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가스통 바슐라르를, 시몬 베유를, 롤랑 바르트를, 톨스토이를, 프리드리히 니체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자크 랑시에르를 기억하게 된다. 특히 나는 존 버거라는 나에게는 새로운 작가를 소개받고 그의 저작을 주문하기도 한다.


2.

그의 책을 읽으며 그어 놓은 밑줄을 소개한다.


과잉 생산되고 과잉 소비되는 사물은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다. 생산성에만 유용할 뿐, 더 많은 소비를 외치는 열망은 더 많은 노동을 외치는 열망의 다른 이름이다. 이 열망은 다른 동료 인간들에게서 행위와 사유의 가능성을 빼앗고, 그들을 더 많은 노동, 더 위험한 노동으로 내몬다. <인간의 조건> 마지막 장에서 아렌트는 탄식하는 어조를 이를 "노동하는 동물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45쪽)


우리가 대상 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면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 거라는 감정적 방어책을 만들어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각종 학살은 대부분 불안 회피용 방어책의 결과였다. (52~53쪽)


카프카가 '문학적 전복'에 관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인간들로부터 멀리 숲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문학의 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61쪽)


 안나는 말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시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말은 이렇게 읽힌다. "나는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 이런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집이 다시 출간되기를! (76쪽)


아침에 처음으로 창밖 내다보기

다시 찾아낸 오래된 책

감격에 겨운 얼굴들

눈, 계절의 바뀜

신문

변증법

사워, 헤엄치기

옛 음악

편안한 신발

이해하기

새로운 음악

글쓰기, 어린 식물 심기

여행하기

노래하기

친절하기

- 브레히트의 <즐거움> (112~113쪽)


기억은 "일종의 갱신/ 심지어/ 어떤 시작, 그것이 여는 공간은 새로운/ 장소이므로"(<일요일 공원에서>). 시 쓰기를 통해 삶은 늘 새롭게 기억되어야 한다. 시인이란 그렇게 믿는 존재이다. (123쪽)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멈추는 것 역시 물러서기, 드러내지 않기의 미학이다. 그것은 튀면 욕먹는다는 비겁한 처세주의와 다르다. 또 사는 동안 영원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인간은 드러내기와 드러내지 않기의 자유로운 운동 속에서 살아갈 때에만 아름다울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억압 속에서도 용기 내어 진실을 말하는 것을 '파레시아 parrhesia'라고 불렀는데, 획일적인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 강요된 발언을 거부하고 침묵하는 것 또한 파레시아만큼이나 용감한 행위이다. (130쪽)


사진 속의 연인, 친구, 강아지와 고양이들. 우리는 떠난 이들을 쉽게 보내지 못하고 그들이 분명 존재했다는  사실을 담아서 '밝은 방'에 자꾸 쌓아두려고 한다. 네가 거기 있었지. 나는 너를 보았지. 이제 안녕, 안녕...... 언제나 사진은 작별 인사인 동시에 지금 곁에 없는 너와 만나는 재회 인사다. (184쪽)

 

3.

진은영의 산문집을 읽고 있으니 아는 선배가 "경윤씨는 진은영의 책도 읽네"라고 말했다. 뉘앙스상 '나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까지 읽고 있구나'라고 들린다. 진은영의 책은 밝기보다는 어둡고, 가볍기보다는 무겁고, 기쁘기보다는 슬프고, 튀기보다는 가라앉는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으니 이른바 노는 물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럼 어떤가? 나도 때로는 낯설고 먼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진은영의 글은 나를 낯설고 먼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그곳이 싫지마는 않았다. 그럼 된 거다. 삼일에 걸쳐 읽는 산문집으로 기분이 신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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