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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Dec 24. 2020

질투하고 있는 당신에게

# 오늘의 느낌 : 부러움에 시샘하는



“질투는 지도이다. 질투의 지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어떤 것에 질투를 느끼는지 파헤쳐보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여성 소설가들의 성공은 단 한 번도 질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성 시나리오 작가들의 성공과 실패에는 병적인 관심을 보이곤 했다. 내가 그들처럼 시나리오를 써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쓴 뒤 질투는 한여름에 눈이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동지애가 차지해버렸다." 《아티스트 웨이》(p.218)   




나는 ‘질투’와 아주 많이 친하다. 사남매 중 셋째 딸로 커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가득 채울 수 없는 콩쥐의 깨진 항아리처럼, 사랑받고 싶은 만큼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고, 늘 목말라 있었으니까. 부러운 시선을 남모르게 거두며 질투인줄도 몰랐던 감정과 동거한 세월이 길다. 사춘기 시절엔 ‘부러움’을 넘어 ‘억울함’과 ‘분노’에 침잠하기도 했는데, 말이 조금씩 다를 뿐, 뿌리는 결국 질투심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엄마 사랑’을 쟁취하지 못해 질투하던 십대를 벗어나 이십대가 되니, 이제는 ‘애인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해 안달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좀 더 일찍 헤아릴 수 있었다면, 내 불안을 건드리는 사랑이 아닌 내 미숙함을 채워주는 사랑을 선택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그와의 사랑이 완전하다고 믿었다. 믿음이 틀어지는 순간에도 미련하게 안간힘을 썼다. 나와 상관없는 ‘남’을 그토록 미워한 적이 없었던 나인데, 질투심에 미움을 키웠던 시절이었다.     




Pixabay

“그 질투심은 나도 하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의 가면이었던 것이다. 질투란 그런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버젓이 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다."

 《아티스트 웨이》(p.218)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골고루 맛보며 나는 조금씩 성숙해졌다. 삼십대의 포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육아에 온몸을 바치며, 엄마라고 해서 완전한 사랑을 결코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설렘보다는 전우애로 똘똘 뭉쳐야 했던 부부관계를 통해, 남녀의 사랑이 늘 뜨겁고 흥분되기를 기대한 것이 얼마나 어리숙했는가를 깨우쳤다. 아이가 어렸던 삼십대 전반엔 질투할 에너지가 없었고, 삼십대 후반에 들어서는 질투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보듬고 사랑하기 위해서만 온 마음을 쏟을 수 있었다. 신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뿌리 깊은 믿음은 새는 구멍을 묵묵히 막아주는 두꺼비가 되어, 내 항아리가 찰방찰방 차오르도록 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는 어느 정도 내 손을 벗어났고, (설렘만 줄어든 게 아니라 다툼도 함께 줄어서 덜 억울한 방향으로) 안정되어버린 부부관계 덕분에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차곡차곡 비축된 채로 사십대를 맞이했다. 근 십년 만에 되찾은 몸과 마음의 여유를 누리느라, 불혹에 접어들었다는 쓸쓸함 따위는 없었다. 대신 ‘나의 사십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하는 자문이 시작됐다. 시의 적절하게 만난 *언니공동체는, ‘거창하지 않은 것이라도, 지금 당장 흥미로운 것을, 일단 지속해보라’ 조언해 주었고, 그렇게 *언니들 따라 이것저것 하며 보낸 2020년을 돌아보니 꽤 알이 그득 차 있다. 코로나로 힘겨웠다기 보다, *언공으로 힘났던 한 해였다.      


덕분에 나는 요즘, 다시금 ‘질투’를 느낀다. 내가 한동안 품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고, 종국에는 놓아버린 그것을. 현재의 삶에서 향유하며 성큼 성큼 미래로 이루어가고 있는 '글쓰는 이들'에 대하여. 내 질투의 지도가 명확하게 보여서 놀랐고, 시기가 아닌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질투의 긍정을 경험하니 기꺼울 뿐이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위해 차려진 언공의 잔칫상에 초대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행동하는 순간, 비로소 거기에는 단 한자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아티스트 웨이》(p.219)  

 




* 언니공동체 : 온라인 커뮤니티 이름, "나를 먼저 키우고, 그 힘으로 우리를 키우는 여성들의 모임"

* 언니 : 언니공동체 멤버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호칭

* 언공 : 언니공동체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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