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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작가 Aug 31. 2024

요동치는 호르몬

임산부의 분노 


 

나중엔 기억도 잘 나지 않을 감정들, 지나고 나면 '왜 저랬어? 성격 파탄자 아니야?' 라며 

삭제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노골적인 글을 써 보려고 한다. 


"같은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에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힘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보다는 

'다들 그래,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라는 동질감과 위로가 아닐까 싶다. 

 





임신 후 요가와 멀어지며 무력하게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고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컨디션이 간혹 돌아올 때, 요가루틴을 촬영해 보지만 쉽지 않다. 

이전 같으면 쉽게 했을 동작을 헥헥거리게 되고 숨이 차는 것이 영상을 뚫고 느껴진다.

임신 후 지방이 늘면서 무너지는 몸의 라인을 보면 조바심이 올라오기도 한다. 


'나중에 뺄 수 있겠지..?' 


어쩔 수 없다. 임산부니까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사람은 바쁠 때 보다 한가한 게 더 무섭다. 


"민중의 괴로움은 궁핍, 귀족의 괴로움은 권태이다"라는 철학자의 말이 있다. 

그만큼 권태도 만만치 않은 고통이다. 


머리는 한가하지 않은 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더 괴로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불행하기 쉬운 사람"은 

원하는 것, 욕심은 많은데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야망도, 원하는 것도 별로 없고 행동도 하지 않으면 현 상황에 만족이 되니 문제가 없다.

요점은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후자의 사람은 아닌 편이다. 


출근 후 요가 수련 혹은  요가 수업, 책 쓰고 SNS 콘텐츠 만들기, 협찬 다니고 강의 듣고 

“어떻게 다 하고 살아..?”라는 말을 듣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덧기간은 그런 불행한 사람이 불가항력적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벳 속 아기가 건강히 잘 자라는 걸 바라며 힘들어하는 것 빼고는 뭐 하나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런 기간에 회사를 쉴 수 있다는 것, 원하던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나름 태교도 자동으로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공부도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별개다 느끼하니 외국어도, 그들의 냄새도 느끼하다. 

평소 출석에 다소 강박이 있던 나는 결석을 많이도 했다. 



생산적인 일이 아닌 기본적, 본능적인 운동하고 먹고 잘 쉬는 것도 되지 않으니

새삼 나의 이 전 에너지가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었음에, 

잃어보니 체력의 소중함을 느끼며 무력감에 괴로워도 한다. 




회사를 다녔더라면 겪었을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그 속에 치이는 사람들과 불쾌해 보이는 표정들

업무와 사람 스트레스, 특히 임신초기에는 티도 잘 내지 못하는 컨디션 난조인 산모가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 시간을 겪고 있는 임산부가 있다면 박수받아야 한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새삼 만삭까지 출근 후 출산을 하러 간 산모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임신 만으로 호르몬으로 인한 우울감이 생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임신으로 인해 변화하는 여자의 몸이 분명 “정상”은 아니기에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내 몸이 힘들면 부정적인 생각들 또한 스멀스멀 깃들기에  



태아에게 좋은 영양소 잘 챙겨 먹고 운동하고 좋은 생각만 하라

 

는 말. "태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어른들의 걱정 어린 조언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아니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 



모두 산모와 아기를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다. 

아마도 요동치는 호르몬 때문일 것이다. 



그건 누구보다 뱃속에 아이를 가진 산모가 가장 바라는 바 일 것이다.


마치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 

"나가서 운동 좀 하고 사람도 좀 만나라"라고 하는 말과 같다고나 할까. 



만약 입덧이 정말 심해서 하나도 먹지 못하는 산모라면 

태아의 영양소 걱정과 미안함, 죄책감까지 더 괴로울지도 모른다.



임신 후에 알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 죄책감과 미안함을 더 느끼게 되는 일이기도 한다는 것.



‘잘 먹지 않고 싶어서 안 먹는 게 아니고요.. 좋은 생각 안 하고 싶어 안 하는 거 아니고요. 

운동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고 싶고요..’와 같은 말을 속에서 부글부글하고 있을지 모른다.



'현기증, 두통에 체력은 안 따라주고 미슥거림과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리는 느낌이라니..?' 



조금이라도 비위에 안 맞는 음식 냄새를 잘못 맡았다가는 구역질에 

그 음식은 먹지 못하는 리스트에 추가되어 꼴 보기 싫어지기에.



배는 수시로 고픈데 이것도 저것도 못 먹겠는 이 상황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요!!



라고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기도 한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산모, 피부 가려움증에 고통을 호소하는 산모도 있는데 


나의 경우 14주 차부터 특정 부위가 극도로 간지럽다 말다 하는 소양증이 생겼다.

특히 밤에 잠을 자는 중에 그 가려움 증은 심해지기도 한다. (숙면을 못한다는 뜻)



간지러움증이 무서운 것은 '또 참을만한 가?' 싶기 때문이다. 

통증은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는데, 간지러움증는 그렇지 않다.

'혹시 약을 바르면 태아에게 안 좋지는 않을까..' 싶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기로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방법은 없는지 인터넷을 모두 뒤져본다. 그래도 찾아볼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이다.  

평소 괜찮던 몸에 닿는 옷의 소재, 이불까지도 모두 불편하고 가렵다. 

온갖 크림을 써보고 원시적인 방법을 동원해 봐도 소용이 없다.


결국 피 딱지에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봤더니 어이가 없다. 



'내 피부... 그래도 태아에게 안 좋은 것보단 낫지.. 그래 나는 엄마다!'



다음 진료에 담당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했다.

긁으면 상처가 심해지고 까매지니 처방 연고를 바르라고 하신다.

스테로이드가 조금 포함되어있지만 아기 기관 형성이 잘 된 것을 다 확인했기에 괜찮다는 것이다.



'그래 너무 심하니까. 정 못 견딜 때만 발라야겠다...'


 

병원에 다녀온 후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양가 엄마는 몸은 괜찮냐고 물으신다. 

그렇기에 나는 간지러움 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똑같이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그 연고 바르면 애기한테 안 좋은 거 아니야?



물론 알고 있다. 그냥 자연스레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기에.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 뒤로, 아기가 우선이기에 "oo맘"이 된다는 것.



하지만 화가 난다. 



아니 의사가 괜찮다잖아요. 오죽하면 바르겠냐고요.
그럼 이렇게 괴로운데 나는 어떡하라는 건가요?



라고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저렇게 X가지 없이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럴때는 '아무리 좋아도 시댁은 시댁이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씁슬하다.

'결국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다. 



'이 놈의 호르몬 때문이지..'라고 탓하며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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