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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Feb 03. 2024

프롤로그  사람, 사람들 사는 이야기

손바닥만 한 소설처럼 보여야 할

사진 출처 pixabay





왕복 6차선의 도로가 만나는 곳, 우리는 흔히 네거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곳에 초록등을 내걸어 사람을 건너게 하고, 빨간 등을 켜 자동차를 세운다. 한꺼번에 길을 건너는 사람, 사람들.


네거리는 하나의 광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네거리에는 오랫동안 서 있어 볼 만하다. 네거리를 가득 채우는 군상群像들을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삶의 한 단면일 수도 있기에.


무엇이 그리 바쁜지 헐레벌떡 뛰어가는 중년 남자,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젊은 엄마, 닭꼬치를 입에 물고 있는 여자 중학생, 굽은 허리로 인해 보행이 불편한 노부부, 검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종종걸음 하는 아주머니, 몸매가 확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자, 검은 배낭을 메고 킥보드를 타고 사람들 틈을 헤집는 청년.


그들은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것은 그들의 겉모습일 뿐이다. 힘겹게 걷고 있는 노부부의 느릿한 걸음.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킥보드를 타고 헤집고 있는 저 청년의 마음.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말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상상想像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을 일이다. 내 마음대로 저들의 마음을 긁어모을 수가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려볼 수가 있지 않을까.


언젠가 대만 여행 중에 이른 아침 비가 내리는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곁에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작은 우산을 쓰고 있는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깊은 우수憂愁에 잠겨 있었다. 여자는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길을 건너지 않았다. 나는 까닭도 모를 전율에 사로잡혔다. 긁으면 한 가마니는 될 만큼 소름이 돋았다. 온몸으로 나는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때 유주현의 '탈고 안 될 전설'이 생각났다.


이튿날, 황금빛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참외밭머리에서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 차림의 여인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石像)이 되어 있었다.  


유주현은 이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사연의 실타래를 풀지 않기로 한다. 오로지 머릿속에만 담아두겠다고 한다. 이들 사이에 걸쳐있는 사연을 독자들에게 넘긴 것이다. 그러니까 유주현의 이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다양한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말하지 않아서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세상의 작가들은 모두 입을 닫아야 할까.  아니다. 유주현처럼 작가가 만난 사람들을 독자들 앞에 내놓기는 해야 한다. 내놓은 이후에야 독자들 끼어들 상상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작가들은 밤을 밝히고 앉아 있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은 모두 말하고 싶어 했다. 볼품없는 초라한 삶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은 털어놓고 싶어 한다. 알량한 붓일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바로 내가 사는 세상이다. 그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아픈 이야기는 바로 내 가슴속에서 앓고 있는 힘든 시간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세히 말할 수 없다. 짧은 소설, 말하자면 손바닥만 한 소설이라고 장편掌篇이라고 말하는 그 짤막한 이야기를 내밀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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