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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r 29. 2024

혜화동 2

골목과 공간에 아로새겨진 기억들

동숭동에서 영화를 자주 보던 때가 있었다. 멀티 플렉스의 3 개관 정도가 들어서서 다양한 영화를 골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종로 쪽의 대형 영화관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었지만 중간 규모의 아기자기함이 주는 친근함이 편했다. 동숭동의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 대로변에는 제법 규모가 큰 레코드가게가 있었다.  한참 CD 음악이 인기를 끌던 시기여서 타워레코드 같은 상점에는 젊은 청춘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약속장소로 삼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기다리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공간이었다. 운이 좋으면 클래식 명반들을 정가보다 싸게 살 수 있었고 최신 유행곡들도 맛보기로 들을 수 있었다. 헤드폰을 귀에 대고 몇 분간의 데모 음악을 즐기는 짜릿함. 


커피를 마실 때는 혜화동 로터리에 자리하던 난다랑으로 향했다. 통창이 대학로 쪽을 향하고 있어서 바깥을 바라보며 대화하는데 그만이었다. 1990년대 20대 청춘들이 문화와 낭만을 쫓아 대학로에 모여들었을 때 내가 주로 찾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잘 연락이 안 되는 친구들과 이곳에 모여 차를 마셨고 성대방향의 골목길에서 순댓국으로 허기를 달랬다.  


아내와 친구 사이였을 때 대학로 연극과 공연을 보러 왔었다. ‘비언소’는 보는 내내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고 연기자들의 맛깔난 연기에 연신 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무대의 첫 등장에서는 바람잡이로 극 중에서는 시장상인으로 ‘골라골라 골라 잡아’ 옷을 파는 상인 역을 했던 ‘송강호와 은경표’의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에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의 열연은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은 무대연기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작품의 연출자가 박광정이었음을 나중에 알았을 때 그는 연기뿐 아니라 연출에서도 다재다능한 아까운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공연장은 학전이었다.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학전의 공연은 당연 ‘지하철 1호선이다’. 뮤지컬이 뭔지도 잘 모르던 나에게 소극장 무대의 춤과 음악이 곁들인 공연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 사람도 아내였다. 독일의 원작을 우리 현실에 맞게 잘 번안한 김민기의 작품 다웠다. 그때 열연한 배우들은 누구였는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 무대를 통해 수많은 인기배우를 배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학전의 공연 중에서 아쉽게 놓친 것이 있다면 당연 김광석의 무대다. 1991년에서 1995년 사이에 100회 이상의 라이브 공연을 열었는데 그 기회를 갖지 못했다.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넉넉지 못한 청년의 주머니 사정에 분주했던 일상에 기인한 탓이다. 아내의 기억 속에 그 공연은 음악뿐 아니라 말소리 숨소리 하나하나가 다 좋았다고 했다. 공간과 시간과 귀를 사로잡은 환희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대학로의 한 시대를 빛냈던 학전의 의미는 그래서 남다른데 이곳 역시 시대의 변화에 녹록지 않은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혜화동과 동숭동을 걸으면 골목과 공간에서 문득문득 과거의 감정과 느낌들을 마주한다.

친구사이에서 썸을 타다가 나의 옆지기로 자연스럽게 변화 발전한 시간들. 


대학로는 여전히 미래의 스타를 꿈꾸며 현실을 견뎌내는 가난한 예술인들이 존재하고

나는 점점 한적한 산성길에 마음이 간다.  

여유로운 날에는 성곽길을 돌아 한성대역 방면으로 걸어볼까 한다. 



표지사진 :  옛거리 재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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