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내가 과거에 수영 레슨 받고 생긴 등근육 때문이다
나: “여보, 나 요새 옆구리 살 좀 빠진 거 같지 않아?”
아내: (조용...)
나: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최근 6개월 이상 운동하니까 옆구리 살이 빠진 거 같아”
아내: (마지못해) “그렇네” (덧붙여서) “내가 여보 칭찬하지 않는 이유는 예전에 여보를 칭찬하자마자 여보가 수영을 그만뒀기 때문이지”
우리 부부는 알고 있다. 그 사건이 무엇인지.
첫딸이 태어난 해. 육아를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는 절대 진리를 위해, 평소 운동을 안 하면 40대에 뱃살이 늘어나는 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리고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난 입으로만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미루다가, 결국 아내의 강력한 푸시에 아무 운동이나 하기로 했다.
내가 입으로만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스쿼시를 하고 싶은데 요새 제대로 된 코트가 없다, 회사 근처 헬스장은 출퇴근 전후에 하면 피곤하다, 길거리를 뛰고 싶은데 비가 내리면 제대로 못한다, 생각보다 헬스장이 비싸다 등 나는 나름 여러 가지 변명으로 운동 시작을 지연시켰다. 난 기본적으로 운동을 즐겨하지 않는다.
일단 아내가 수강료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동네 부근 수영장에 등록했다. 3개월 동안 매주 2번을 나가니 운동량이 제법 되었다.
수영을 한지 얼마 후 아내가 나의 등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니 수영을 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등근육이 생기다니... 아내의 눈에는 연애 때의 콩깍지가 다시 씌워지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나의 단기적 성과를 보고는 평소답지 않게 나에게 폭풍 칭찬을 했다. 계속하면 다른데도 근육이 생긴다, 이제 멋진 남자가 되겠다 등등.
하지만 나에겐 등근육이 생긴 것은 목표 달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Mission Accomplished”
등근육을 만들어서 아내에게 나의 운동에 대해 인정을 받았으니 더 이상 운동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수영 강사가 매번 구박하는데 더 나갈 필요성이 없었다. 칭찬을 들은 날 이후 주 2회가 주 1회, 월 3회, 2회... 결국 6개월간의 수영이 끝나고 난 더 이상 레슨을 갱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등근육은 소멸...
이후 아내는 내가 운동을 시작하고 몸에 변화가 와도 칭찬을 하지 않는다.
아내의 이러한 변화는 “이인제 학습효과”랑 비슷하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39만표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인제가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후 출마하여 500만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후 유권자들은 탈당한 정치인에게 표를 안 줘서 같은 세력의 표가 분산되는 행위가 없어졌다. 이것이 이인제 학습효과다.
아내는 등근육 사건 이후 내가 곧바로 운동을 포기할까 봐 칭찬을 더 이상 안 한다고 한다.
그것 때문일까. 나는 작년 8월부터 꾸준히 뒷산을 아침마다 오른다. 미세먼지가 있으나 눈이 내리나 비가 내리나 추우나(심할 경우에는 안 나가지만) 계속 뒷산을 묵묵히 오른다.
오늘의 교훈: 칭찬은 고래를 멈추게 한다.
그래서 아내는 오늘도 칭찬을 안 하고 나는 오늘도 칭찬을 받기 위해 산을 오른다.
뒷산을 오르는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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