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의 기록 : 나는 언제쯤 단풍의 절정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단풍이 절정인 건
10월 말 ~ 11월 초라는 것을.
하지만 재무회계팀에서 일하는 나는 절대 평일에 휴가를 낼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정해야 했다.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한 10월의 서울탐방을 10월 중순에 할 건지 아님 깔끔하게 10월 마감을 끝낸 뒤 바로 그 직후인 11월 초로 할 건지.
하지만 10월 중순에 가기엔 애매했다. 9월도 아니고 아직 10월인지라 여름의 푸르름도 생기를 잃어버린 무늬만 푸른색인 이파리들이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건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야. 대신 11월 초에 가면 단풍 절정은 조금 지났을지 몰라도 그래도 확실히 가을 분위기가 날 거 같았다. 그래서 깔끔하게 11월 계획 <-> 10월 계획을 맞교환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단풍이 절정일 거라 예상되던 11월 첫째 주 주말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던 것이다. 안 그래도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하늘하늘 팔락거리던 약한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던 일인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걸 바탕 삼아 기필코 내년엔 멋진 시기에 서울을 누비리라, 그때는 회계일은 그만둔 상태이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또 모르지. 그새 다른 일하고 있을지도?) 이번 달 서울탐방을 시작한다.
매달매달
아니,
매분, 매시,
고민이 계속 쌓인다.
오늘도 그런 상태에서 하루를 보낼 뻔했다. 팀장이 되고 나니 팀원들은 어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나는 팀원들을 모신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내가 사바사바 해서(?) 얘들을 잘 데리고 있어야 결국 편하다는 것.
아침에 팀원에게 티타임을 신청(?)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은 힌트를 얻었다. 근본적인 해결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 한숨 놓을만한 방법은 찾은 거 같아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후 반차를 만끽하기 위해 십일월 한낮의 거리에 나섰다.
오늘 목적지로 나를 실어다 줄 버스를 기다리는데 출퇴근시간이 아니라 배차간격이 길어져서 그런지 참 안 온다. 다행히 햇살이 너무 따스하다.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권순관의 목소리도 너무 따스하다. 요즘 내가 따스함을 느끼는 건 사람 사이에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정말 딱 요런 곳들에서 느끼는 것들 뿐이다.
어제저녁 퇴근길.
유치한 거 같지만 나한테 자꾸 반기를 드는 팀원이 있어 너무 빡친 나머지 그녀가 일방적으로 나한테 보낸 메일을 위의 임원한테 토스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면 내 편 들어주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임원분도 그녀랑 일한 적도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도 있고 해서 내 편에 서서 같이 화를 내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결국 이 모든 건 내가 팀원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해서 사달이 난 거 아닌가. 내가 못하겠으니 위로 문제를 넘긴 거 아닌가. 결국 내 능력 부족만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단 거다.
팀장 제의가 처음 왔을 때부터 위에서 걱정하던 그 부분이 바로 곪아 터졌다. 그걸 내보이는 거 같아서 그 지점을 인정해 버린 꼴이 되어서 너무 싫었지만 나는 이미 퇴사하기로 마음을 정했기에(회사에는 시기 상 아직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어차피 내가 부족한 거 인정하고 + 더 이상 못해먹겠고 + 나도 할 의지가 없으니 퇴사할 거다.
그러고 나니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마음 한편에 헛헛함을 감출 수 없었다. 걷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들도 있고 해서 본격적으로! 막 한 시간씩 쭉 걷는 걷기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집 앞에서 5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양재천 산책로가 있다. 이게 바로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좋은 점 중 하나인데 거의 활용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데크 한 바퀴라도 돌고 오자 싶어서 퇴근길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양재천으로 향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