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 생활에서 가장 후회한 것과 지금이라도 시작한 건강 루틴
장학사 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출퇴근이었다. 교사 시절엔 비교적 규칙적인 출퇴근과 방학 덕에 숨 돌릴 틈이 있었지만, 장학사가 되니 그런 여유는 사라졌다. 발령지에 따라 왕복 4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서 보내기도 했다. 강화교육청 근무 당시엔 새벽 6시 전에 출발해야 체증을 피할 수 있었고, 저녁엔 8시가 넘어서 집으로 출발했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졸음운전이 일상이 되었고, 어느 날 신호 대기 중 깜빡 졸았다가 뒤차 경적에 놀라 깬 적도 있었다. 그날 ‘이렇게까지 버티는 게 맞나?’ 싶었고, 출퇴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게 됐다.
피곤한 날은 무리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아침엔 커피보다 스트레칭과 가벼운 호흡으로 몸을 깨우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차 안에서는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허투루 쓰는 느낌을 줄였다. 출퇴근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조절하는 시간’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교육청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몸이 굳어간다는 사실이었다. 교사 때는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며 자연스러운 운동이 되었지만, 장학사가 되고 나니 하루 10시간 이상을 의자에 붙박혀 살아야 했다. 바쁜 날은 점심조차 허겁지겁 먹고,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
결국 허리와 목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디스크 통증으로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손목은 아팠고, 눈은 쉽게 침침해졌다. 평생 살이 잘 찌지 않았는데 교육청 1년 차에 허리둘레가 늘었다. 그때야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15분을 달렸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한 달쯤 지나니 타지 않으면 오히려 답답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며 하루 10층은 걷기를 목표로 했고, 회의 전후 등 틈틈히 짧게라도 몸을 풀었다. ‘운동은 회복’이라고 생각하니 우선순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장학사라는 자리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행정 실무부터 교육청 정책까지,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어야 하는 자리’였다. 실수하면 곧 내 책임이었고, 업무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여유도 없어 혼자 버텨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몇 달이 지나니 불면증과 불안이 찾아왔다. 새벽 3~4시에 깨어 보고서를 어떻게 쓸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다가 다시 잠들지 못했다. 주말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만성 피로가 쌓였고,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긴장되는 순간마다 호흡을 길게 내쉬는 연습을 했다. ‘깊은 호흡법’을 습관처럼 쓰니 심장이 두근대는 속도가 조금은 안정됐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책임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최소한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퇴근길엔 5분이라도 생각을 멈추는 시간을 가졌고, 토론회 같은 큰일을 마친 날엔 음악과 간식으로 스스로를 보상했다. 이런 작은 루틴이 버틸 힘이 됐다.
교육청은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얽히는 공간이다. 교사 시절에는 내 교실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틀며 일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하루 종일 전화와 보고, 협의와 회의가 이어졌다. 의도치 않은 오해와 갈등도 잦았다. 발령 초기엔 환영회에 매일 불려 다니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6년 동안 느낀 건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성향이 맞는 분들과 일할 땐 버틸 만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하루가 한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런 스트레스가 장기적으로 마음 건강을 갉아먹는다는 걸 체감했다.
그래서 감정이 올라올 땐 바로 반응하지 않고 한 박자 쉬는 습관을 들였다. 불필요한 회식은 가능하다면 줄이거나 작은 힐링 아이템도 큰 도움이 됐다.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숨을 고르는 시간만으로도 버틸 힘이 생겼다. 인간관계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인정하고,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장학사 생활은 마라톤이 아니라 울트라 트레일 러닝에 가깝다.
쉬지 않고 달리는데, 코스는 험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내가 끝내 깨달은 건, “건강을 지키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몇 년은 이를 소홀히 했다가 몸과 마음이 무너졌고, 지금은 ‘나만의 생존 전략’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래는 시행착오 끝에 찾은 5가지 루틴이다.
퇴근 후 헬스장에 가겠다는 계획은 늘 야근과 회의 앞에서 무너졌다. 운동할 힘도, 시간을 낼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매일 하는 출퇴근을 그냥 운동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자전거로 집에서 역까지 15분을 달린다. 처음엔 날씨가 조금만 궂어도 차를 타고 싶어졌다. 그런데 한 달을 꾸준히 타고 나니 신기하게도 자전거를 안 타는 날은 오히려 찌뿌둥하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아침에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심장이 깨어나고,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걸음 수도 억지로 늘렸다. 일부러 먼 역 출구로 나가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탔다. 하루 1만 보를 목표로 삼고 지키려 애썼다.
초반엔 ‘주 3회 운동’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그래서 아예 정해진 시간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매일 반드시 하는 행동에 운동을 붙이자’고 마음을 바꾸니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서류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은 목과 허리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어깨가 늘 굽어있었다. 통증이 쌓이고 나니 하루가 더 힘들어졌다.
휴대폰에 2시간마다 ‘자세 체크’ 알람을 설정했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허리를 펴고, 어깨를 내리고, 복식호흡을 3분만 했다. 그 짧은 습관 하나로도 피로가 덜했다.
민원 전화를 받을 때마다 심장이 빨라졌다. 그럴 땐 5초 들이마시고, 3초 멈추고, 5초 내쉬는 호흡을 반복했다. 그 작은 호흡법이 감정을 다스리는 데 꽤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엔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구부정하게 일하다 퇴근할 때 목이 뻣뻣했다. 스트레칭을 배워도 효과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업무 중간마다 1분 스트레칭을 강제로 넣었다. 지금은 그게 내 몸을 살리는 ‘숨구멍’이 되었다.
교사 시절엔 웬만한 통증은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교육청에서 그 습관은 더 큰 병으로 돌아왔다.
허리나 목이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물리치료를 받았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넘겼다가 허리 디스크가 악화돼 몇달을 고생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작은 신호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병원, 야간 진료 병원을 2~3곳 미리 확보해놨다. 허리가 아프거나 편두통이 생겨도 바로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예전엔 ‘시간 나면 병원 가야지’ 하다 결국 주말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있다. 그 후로 내 몸이 보내는 작은 경고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장학사 생활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합격했을 땐 세상을 바꿀 것 같았는데, 한 달도 안 돼 민원과 행정에 파묻혔다. 그때 가장 무서운 건 무기력감이었다. 마음이 무너지니 건강까지 따라 무너졌다.
그래서 일부러 작은 보람을 찾아다녔다. 교원 인사 업무를 하다 복잡한 절차에 지칠 때면 ‘내가 하는 일이 결국 학교를 돕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보고서 하나를 끝내고 누군가 감사 인사를 건네면 그걸 마음속 체크리스트에 기록했다.
퇴근길엔 일부러 음악을 크게 틀고 10분 정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내 시간을 완전히 잃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초반엔 ‘포부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왜 이 자리에 왔는지’를 매일 다짐해야 다시 버틸 힘이 생겼다.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 습관 때문에 만성 소화불량이 생겼다. 내과 약도, 한약도 소용없었다. 결국 생활 습관부터 바꾸는 게 답이었다.
포만감 직전까지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회식 자리에서는 일부러 한두 숟가락 덜 먹었다.
늦은 저녁은 끊었다. 야근 후 10시가 넘어 배가 고프면 따뜻한 차나 누룽지밥으로 대신했다.
아이스 음료와 아이스크림도 줄였다. 여름마다 습관처럼 마셨는데 안 먹으니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처음엔 ‘스트레스 먹방’으로 버텼다. 회의 후 폭식하고, 당이 필요하다며 달달한 음료를 마셨다. 체중은 늘고 위는 더 아팠다. ‘내 몸은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식습관을 고쳤다. 지금은 그 덕분에 위가 한결 편안하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초반 몇 년 동안 이를 소홀히 해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것.
지금은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만 예전 체력의 반도 안 된다는 걸 매일 느낀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오늘 당장 몸과 마음을 챙기는 루틴을 하나라도 시작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2025. 8.1.(금)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