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Nov 14. 2023

콩콩콩 절구야. 절구야. 귀여운 돌절구야

하나

마늘을 찧어 볼까? 콩콩

생강을 찧어 볼까? 콩콩    

 

우리 집엔 귀엽지만 묵직한 돌절구가 있습니다.


한번 떨어트리면 절구와 공이는 무사하지만, 다른 주변 물건들이 무사하지 못하지요. 부엌 바닥이 패었다거나, 그릇을 깬다거나, 발등이나 발가락에 멍이 든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요놈이 참 좋습니다.      


가벼운 플라스틱 절구도 시중에 판매하지만, 너무 가벼워 발로 밑부분을 누르고 몸을 구부려 찧어야 한다는 슬픈 사연으로 찬장에 모셔두었다, 색이 바래 분리수거를 했고요.

온몸을 구부리지 않고 서서 커다란 공이를 휘두를 수 있는 대용량 나무절구는 낑낑거리며 들고 움직이거나 카트를 이용해야 하므로 불편해 사양하였습니다,

적당한 나무절구도 써봤지만, 자주 오일을 입혀줘야 하고 동네 특성상 습기가 많아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해 눈물을 머금고 태웠습니다.

그런 연유로 이제는 돌절구만 남아있지요.     


맞습니다. 사실 푸드프로세서에 갈거나, 믹서, 핸드블랜더, 분쇄기,  착즙기 같은 기계들을 주방에서 이용합니다. 해피콜, 닌자, 필립스, 켄우드, 바이타믹스 등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어 음식 재료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것이 찧어지고 갈아집니다. 적은 양이라면 강판에 갈아도 되고,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 손잡이 끝으로 찧어주어도 되고요. 그리고 주방용 마늘 프레스로 눌러 사용해도 되고요. 요리에 따라 사용하는 기구들도 다양하지만, 전 절구를 많이 이용하는 듯합니다.     


콩콩콩 찧는 재미도 있고 돌절구 특유의 촉감과 그립감도 좋아요.

때로는 절구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줘야 해서 귀찮고, 가끔 햇볕에 일광욕도 시켜주고요. 솔직히 손에 힘이 없는 저는 무거워 두 손으로 들고 낑낑거리며 씻어야 합니다. 세척 후, 절구는 건조기 선반에 올려놓지도 못하고요. 잘 못 올려놓았다가 또르르 떨어진 공이가 사기그릇을 깨트리자, 동생이 째려봤던 기억이 있다 해도 밉지 않네요.    

  

통후추를 돌절구에 넣고 빻아보세요. 집안에 후추의 시원한 매콤함과 달콤함이 온 집에 은은하게 풍기는 향을 맡아보세요. 기계가 드르륵 갈아놓은 매큼한 향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이 은은한 후추 향을 머금은 매력적인 향수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통후추를 빻은 돌절구에 마늘, 생강, 계피, 민트를 넣어 빻은 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과 시트러스 종류의 오렌지나 레몬, 라임, 귤즙을 넣어 공이를 돌려 샐러드 소스를 만들어 뿌려주면 주는 채소의 맛과 설탕을 넣지 않아도 향기로운 맛과 향까지 피어나는 소스의 풍미가 입안에서 어우러집니다. 거기에 쿰쿰한 치즈나 고소한 견과류까지 올려주면 한 끼 다이어트 식사로 그만이죠.     


마늘·양파 만능 자동 다지기도 유용하지만, 요리에 따라 거칠거칠 다진 양념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식처럼 찧고 짓이겨 낸 부드러운 식감의 마늘 그리고 생강에서 나온 진에 매실액, 탱자즙, 배즙, 양파즙 그리고 집간장·양조간장·어간장 믹스가 만나 자연스럽고 깊은 맛을 내주는 불고기 양념을 생각만 해도 침 넘어가네요. 불판에 올려 구워 부들부들한 고기 한 점 하얀 쌀밥 위에 올려 먹으면 최고지요. 얼마 전에도 두 근 사다 재워놓고, 불고기덮밥에 불고기 쌀국수 볶음으로 맛나게 먹고, 갑자기 찾아온 손님 접대에도 한몫했네요.

참 희한하게도 좋은 푸드프로세서나 믹서 같은 기기를 사용해서 요리해도 돌절구에 찧고 짓이긴 진액이 섞인 마늘과 생강, 고추 등이 들어간 양념의 맛을 따라가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역시 한식 준비엔 돌절구가 빠지면 안 된다.’라는 건 어쩌면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요.     


바질 페스토의 맛은 어떻고요.

먼저 잣을 갈 듯 찧고, 마늘을 넣고, 그다음 바질 잎과 약간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넣어 빠르게 갈 듯 찧는 것을 반복하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진득한 소스가 될 때까지 반복, 또 반복을 거듭합니다.

절구를 이용하면 믹서에 가는 것보다, 열을 받지 않아 색도 선명한 초록색을 유지합니다.

그런 후 그레이터에 갈아놓은 그라나빠다노 치즈를 더하고 소금 그리고 후추로 간합니다.

토마토와 버팔로 모차렐라 카프레제도 좋지만, 바질이 한 장 올라올 때 잡히는 갑오징어 철이 오면 갑오징어 먹물 대신 바질 페스토를 넣어 갑오징어 볶음 요리로 한 상을 차리면 이젠 여름이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지요.      

 

요놈이 음료의 맛도 좌지우지합니다.

“언니, 위스키가 이런 맛도 나?”라며 동생이 맛본 하이볼, 지인과 둘러앉아 한 병을 거덜 냈지요. 라임을 썰어 넣어 몇 번만 찧어주고 제스트 향까지 우러나온 라임을 넣어주면, 더 상큼하고 향이 진한 두부의 최애 하이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 민트까지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손님 초대 상에 하이볼을 대접해야겠네요.

레몬이나 라임을 절구에 누르고 살짝 찧어 에이드를 만들어보세요. 스퀴즈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맛은 분명 달라집니다.     


우리 집 귀염둥이 돌절구가 요리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면 보자기에 쌓아놓은 두부나 나물 위에 절구를 올려놓고 다독거려 주면, 조그마한 것이 육중한 무게로 물기를 싹 빼줍니다. 그동안 저는 다른 일을 볼 수가 있지요.

급하게 손님이라도 오면 냉동실에 얼려놓은 마늘, 생강 등을 꺼내 공이로 콩콩 찍어주면 간단하게 분해해 주기도 하지요.

견과류도 봉투에 넣어 공이로 톡톡톡 내리쳐주면 가볍게 부서집니다.      


솔직히 믹서는 물을 넣어야 갈리고, 푸드프로세서는 어느 정도 양이 되어야 갈리기 시작하지요. 저 같은 경우는 전기세도 무시 못 하죠. 하지만 돌절구는 뜨거운 물 부어 벅벅 닦으면 땡이고, 전기세도 안 나옵니다.

  

“하하하” 사실 억지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요.


제가 30년이 다 돼가는 시간 동안 요리사로 일하며 디지털 기구들을 많이 섰지만, 우리 집 주방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첫 이야기로 동고동락하고 있는 돌절구를 꺼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만져주고 돌봐줘야겠습니다.

이전 01화 부엌 안, 조리 도구가 몇 개인지 궁금해졌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