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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20. 2023

아버님, 며느리에게 전어를 구워주세요. #11

글쓰기 연습

나와 내 동생은 우리 집 잔디를 깔며 인연을 맺게 된 석재상 사장님과 가끔 식사를 같이한다.     


잔디와 석재, 조금 안 맞는 구석이 있지만 석재상에서 많이 파는 품목 중 하나가 잔디다.

작년 잔디를 사기 위해 화원에 들렀었다. 화원 사장님은 잔디를 심는 철이 아니라 재고가 없다며 석재상을 추천해 줬다. 처음엔 왜 석재상에서 잔디를 사는지 나 또한 궁금했었다. 석재상에 도착한 우리는 아무리 봐도 잔디는 없고, 마당엔 돌들만 쌓여 있었다.      


동생과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사무실 안, 테이블 앞에 앉은 손님께 설명하던 사장님이 우리에게 손짓하며 들어오라 하셨다. 우린 조용히 소파에 앉아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갈 기회가 없었던 석재상에서 하는 일 그리고 잔디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했다. 사무실에서 손님과 대화를 하는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난 ‘아하!’하고 묘지와 잔디 그리고 석재를 매치할 수 있었다.      


산만 한 덩치의 사장님은 의외로 상냥하셨다. 잔디 식재에 대한 공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잔디는 심어봤다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는 사장님.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 해봤다고 “제가 아는 집에서 조금 얻어 이식해 봤는데 지금 잘 자라고 있어요.”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동생과 나는 잔디를 구매만 하고, 심는 일은 우리가 직접 하겠다는 설명에 사장님은 걱정이 되는지 직원을 보내지 않고 본인이 직접 싣고 집으로 와 주셨다. 그러고도 잘 심었는지 걱정된다며, 종종 우리 집에 들러 둘러봐 주시고, 잘 심었다고 칭찬하시더니, 가끔 잔디도 깎아주셨다. 그런 인연으로 우리는 식사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저번주, 식당에서 만난 석재 사장님 “아이고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고 있소?” 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셨다.

“사장님이 더 고생이 많으시죠. 이 땡볕에 밖에서 일하려면 힘드시죠. 저희는 에어컨 아래에서 편하게 지냅니다.” 우리를 반가워해 주는 사장님이 고마웠다.

“긍께, 나도 이제 일하고 내려왔소, 별일은 없는 갑소?”

“저희야 그날이 그날이죠.”

“어서 드쑈. 오리인갑네, 오리는 돈 얻어주고도 먹으라는디 먹고 힘냅시다.”

객지에 사는 우리에게 한 그릇이라도 더 먹으라 떠 주시는 사장님의 마음이 항상 감사했다.


아저씨 전화기가 울렸다. “예에, 집안에 일이 있어가꼬, 다음 달 9일로 잡혔네요. 네에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들 결혼해요?” 우린 축하한다며 청첩장을 보내달라 청했다.

“어따 뭐 하러 먼데까지 온다요. 마음만 받을게요.”하며 사양을 하셨지만 우린 그럴 수 없었다.

“갑자기 하는 결혼이라 나도 정신이 없소. 며느리가 임신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혼 날짜를 잡아, 정신이 없소.”하며 배시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시는 사장님 표정이 더 맑아졌다. 사장님 인생에 최고의 자랑인 아들은 성격이 좋아 친구가 많고, 의지가 강한 청년인 데다, 공부도 잘해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선생님이 됐다.

“사장님 좋으시겠네, 1+1이잖아 며느리도 얻고 손주도 생기고 축하해요.”     


우린 자리를 옮겨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랜만에 광주 나들이하고 우린 좋지요. 요즘 결혼식은 예전과 다르던데.” 하며 아저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신부 아버지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내가 축사와 덕담을 맡았는데 깝깝하요.” 진짜 사장님 얼굴이 갑갑하다. “나 며느리 한번 만나봤소. 그래서 잘 몰라.”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언니가 글도 잘 쓰고, 이런 거 잘해요.”라며 동생 두부가 사장님을 안심시킨다. 내가 글엔 자신이 없었지만, 사장님이 우리에게 준 도움을 갚아주고 싶어 그러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 생각해 둔 덕담은 있으세요?”

“난 배려하고 칭찬하며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두 가지만 이야기해주고 싶네. 내가 써 놓은 것이 있제.”라며 사장님이 핸드폰을 뒤적이신다.

“보내주시면 제가 읽어 볼게요.”

요즘은 주례 없이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덕담을 전하고, 폐백도 생략한다던데 어디까지 우리의 결혼 풍습이 변해갈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우린 일주일 뒤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사장님과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동생 두부와 함께 사장님이 적어 내려간 축사 겸 덕담을 읽어 보았다. 우리 둘은 깔깔 웃고 말았다. 며느님에 대해 알 길 없는 아저씨는 아들 칭찬만 늘어놓은  두 장의 글 속엔 시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며느리가 예쁘고 상냥하다는 말이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이말 저말 며느리의 관점에서 듣고 싶은 축사를 써보았다.

사돈과 사부인께 감사의 인사, 아들에게 장모님께 잘해드리라는 당부. 배려는 서로 존중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부족함을 채워준다. 이해해 줘라. 아들아 집안일 청소, 빨래, 요리, 쓰레기 청소 같은 일을 와라. 사장님이 원했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 남자는 엉덩이만 톡톡 두드려주고 ‘최고야!’라는 칭찬 한마디면 끝난다. 서로 칭찬할 점만 찾다 보면 서운함과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건강해라. 등의 뻔한 말이지만 부부가 기본으로 지키면 좋을 만한 것들을 찾아 쓰기 시작했다. 특히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하는 아들과 며느리가 자랑스럽다는 것을 강조하기로 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아저씨의 목소리 톤과 평소 말하는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사무실로 찾아가기로 약속을 하고 두부와 나는 마지막 점검을 했다.

“언니 이 정도면 만족할 것 같아.”

“아무래도 모셔 놓고 연습을 시작해야겠지. 사장님 목소리와 말하는 스타일이 너무 모노톤이라 잘 쓴 글도 읽으면 재미없어지는 스타일이라. 걱정되네.”    

 

주말에 사장님을 찾아갔다. 작성한 A4 지를 받아 들고 심각하게 조용히 읽어 보시다, 소리 내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목소리가 점점 기어가 들어간다.

“아무래도 내가 몇 번 읽어 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되는가 모르겠소.” A4 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그럼 되지요. 마음에 드는 부분을 선택하시고, 생략할 부분은 볼펜으로 체크해 주세요. 며느님 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편했을 텐데.”

“나도 잘 모르요. 이제 3번 봤는디, 뭘 알고 뭔 정이 들었것소. 우리 아들에게 시집온다니 잘해주려 하는 거제.” 아저씨의 표정은 아들이 장가는 가고 손주가 생겨 좋은데, 갑자기 나타난 며느리는 아직도 얼떨떨하신가 보다.

“식사나 같이하고 가쇼. 요즘 전어가 맛이 들어 좋아.” 사장님이 식사를 권하셨다.

“전어가 벌써 나왔나요. 날씨가 더워 늦게 나올 줄 알았는데.” 올해의 첫 전어를 먹게 생겼다.    

 

우리는 사장님 차를 타고 바닷가 마을 쪽으로 드라이브 겸 전어구이를 찾아 길을 떠났다. 읍에서 한 25분쯤 걸려 도착한 넓은 식당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고, 그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을 들어서자 메뉴 주문도 안 받는다. 이 마을에 달랑 두 개 있는 식당은 전어 철엔 전어회, 구이, 무침 코스요리만 제공한다.     


예전엔 덤으로 주던 전어가 이제는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느니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발길을 돌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엔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 번은 전어구이를 먹는다. 돈이 있던  없던 가을엔 꼭 돈 내고 사 먹으라는 생선이라 붙인 전어. 오죽하면 錢, 돈 전자를 넣었을까. 가을에 지방질이 많아지고 살이 오르는 전어는 서해안에서 남해안까지 얕은 바다에서 서식해, 여기도 전어가 한철이다.     

 

식당 한자리에 앉자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식당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내가 아가씨들 앞에서 읽어볼란디 쑥스럽네. 읽어 보고 내가 며칠 내로 전하게요.” 덩치가 큰 아저씨가 정말 쑥스러워하신다.

“천천히 읽어 보시고 며칠 뒤에 연락해 주세요. 어쨌든 올해 첫 전어를 먹게 돼 좋네요. 구수한 전어구이 먹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찬찬히 많이 들어요.” 아저씨가 내가 써드린 축사가 마음에 드셨는지 A4 지를 들고 다니신다.


전어회가 나오자 “집 나간 며느리도 들어 온다한디.”라며 전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동생과 내가 “사장님 며느리는 전어 따라 시집왔네요. 나갈 일은 없겠네.”라고 말해드리자 사장님이 웃으신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한 점 들어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먹세.”라며 다시 축사 이야기로 넘어갔다.     


요즘은 아들이 장가를 가면 며느리에게 뺏기는 기분이라더니 사장님도 그럴까?     

내 아들이 장가간다고 여자친구 데려오면 나도 저런 기분이 들까?

요즘 ‘시’ 자만 들어가면 시집 안 간 여성들도 싫어한다던데, 어떻게 좋은 점만 보고 살겠습니까. 새 식구가 되었으니 들어온 사람도 맞이한 사람도 사장님의 말씀처럼 배려하고 칭찬하며 살아야지.     


가을 축사에는 며느리에게 맛난 전어를 자주 구워주겠다는 말도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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