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 22] 라떼는 말이야… | 20200927
그리고 나서는 이전 글에서도 자세히 썼듯이 6시부터 밤 11시 50분까지 열심히 수업을 듣고, 약 새벽 두 시까지 자습하는 삶의 패턴이 지속하였다. 이렇게 한 달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덧 시험을 치르는 주가 다가왔다.
이때부터는 학원에서도 나름 컨디션 관리 차원이라고 새벽 두 시까지 하던 자습도 안 하게 되었고, 학원 분위기도 무언가 싱숭생숭한 느낌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당시의 외고 시험은 토요일이었는데 그 주 목요일은 (2008년 11월 13일)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다. 그래서 우리 학원에서도 당시 수능 ‘언어’ 영역과 ‘외국어’ 영역을 최종 모의고사 느낌으로 치렀었다. 몇 점을 받았었는지 기억은 사실 안 난다. 하지만 말아먹었고 좌절했던 기억도 없는 거 보니 그냥 무난했었나 보다.
그리고 당시의 외고 입시에서는 지금 대학입시의 수시처럼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 우선 선발하는 전형이 있었다. 그래서 시험 전날 금요일이었는지 전전날인 목요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와 학교에서 이미 외고에 합격한 학생도 일부 나왔다. 비유하자면 수능 전날에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 친구가 생긴 셈인데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하다는 생각에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안 부러웠다는 것은 아님 ㅋㅋㅋㅋ).
또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시험 전날인 금요일은 수업 대신 출정식으로 대체했었다. 지금 안양시장이 최대호라는 분인데 사실 이 분이 학원으로 부자 되신 분이다. 그리고 그 학원이 내가 다니던 필탑학원이었고 친히 최대호 원장님께서 격려사를 해주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남학생 중에서는 울었던 사람이 없는 것 같고 여학생 중에서는 꽤 우는 사람도 많았는데,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허무함 등이 정말 복합적으로 얽혀있던 순간으로 기억이 난다. 반은 달랐지만 같은 학원에 다녔던 친구도 울고 그러기에 집에 오는 길에 그 친구의 친구를 포함하여 친구 몇몇을 불러서 나름대로 응원과 위로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시험의 날이 다가왔다.
시험은 부림중학교에서 치렀는데 아빠가 아침 일찍 태워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 세 번 볼 때도 모두 아빠가 태워줬던 것 같다). 관광버스부터 해서 나처럼 자녀를 바래다주러 온 부모님의 차까지 해서 매우 번잡한 모습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건 수능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항상 시험 시작되기 전의 긴장감이 너무 싫고 피하고 싶은 순간인데 그러한 감정을 외고 입시 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당시 시험은 참고로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영어 독해, 3교시는 영어 듣기 시험으로 되어있었는데 “아 시험 망쳤다”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2교시 영어 독해 때 문법 문제가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문법 공부에 끝이 없긴 하지만, 그 당시 문법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부디 독해가 많이 나오길 바랐던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토요일에 치렀던 시험은 그 다음 주 월요일인가 바로 합격자 발표를 했던 것 같다. 저녁에 엄마와 함께 확인했는데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말이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다가왔다. 나야 뭐 한 달가량만 타의로 빡쎄게 학원 가서 공부했지만, 그러한 빡쎈 과정을 3년 내내 한 학생도 많았으니 나 같은 사람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여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원래 하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어서 외고 준비 과정을 끌어왔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글이 2개월 넘게 늘어져서 타이밍도 놓쳤고 ㅋㅋ 막상 떨어진 직후에는 담담했지만, 그 여파로 생각보다 내 인생에 첫 암울기가 찾아왔던 얘기는 이와 별개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시리즈로 글을 쓰는데 이번 편은 다른 이야기보다 망친 것 같아서 혼자서 괜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이렇게 아쉬운 맘으로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