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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힘들어?

3월 15일 주제 - 사과

by 생각샘 Mar 16. 2025

 나는 사과를 잘한다. 내가 잘못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사과한다. 미안해. 잘못했어. 죄송합니다. 나는 사과를 잘한다.


 그게 무엇이든 대체로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사과를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다. 지가 잘못을 해 놓고도 지기 싫어서 끝까지 바락바락 우겨대는 놈도 이해가 안 되고, 지가 잘못한 건 알지만 부끄럽거나 쑥스러워서 사과를 못 하는 놈도 이해하기 힘들다. 전자든 후자든 고구마다. 답답해서 그 꼴을 봐주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다. 가장 가까이는 우리 남편이 그렇다. 자기가 잘못을 한 걸 알면서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신혼 초에 이것 때문에 작은 일도 꼭 큰 싸움이 되었다. 나는 시원시원하게 사과하고 사과받고 끝내고 싶어 하는데 남편은 자기가 잘못해도 사과를 안 하고 어물쩍 눈치를 보다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려고 했다. 그 꼴을 보기 싫어 참 많이 싸웠다. 길고 잦은 싸움 끝에 남편은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우리 남편은 사과를 잘한다.


몇 년 전 아이가 어릴 때 한 번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엄마, 왜 엄마가 잘못한 건데 아빠가 엄마한테 사과를 해?”


 아이가 말한 엄마의 잘못은 내가 라면을 먹고 봉지를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은 일이었다. 후다닥 설거지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하려고 분주한데  갑자기 남편이 옆에 와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자꾸 라면을 먹느냐, 왜 라면을 먹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도 않느냐. 잔소리가 시작되자마자 사과를 잘하는 나는 사과를 했다. 하지만 남편의 잔소리가 길어지기 시작했고 듣던 나는 화가 났다. 조목조목 따져주었다. 나는 논술 선생님이다. 화가 났지만 화내지 않고 따질 수 있는 자격증이 있다면 나는 분명 그 자격증이 있었을 거다.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나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미안해. 미안하긴 미안한데 억울해. 이건 분명하게 누가 봐도 너의 잘못이니까 이번엔 꼭 네가 사과하고 내가 사과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하는데 왜 끝엔 항상 내가 사과하면서 끝날까? 이상하고 억울해. 네 말을 들으면 내가 엄청 잘못한 거 같고 갑자기 미안해지는데 뭔가 억울해.“


이제 우리 남편은 사과를 잘한다. 내가 잘못한 일도 남편이 사과하면서 끝난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이제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는다.


미안해.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이 마법의 말을 적절하게 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임은경 글, 신진호 그림의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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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에 이 책을 알았다면 그렇게 밥상을 엎으며 싸우지 않고 조용히 이 책을 읽어줬을텐데.

남편아,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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