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AnnE에게

가을

by 안현희 마리스텔라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던데, 나는 전생에 남자였을까? 이상하게도 가을이 오면 계절을 탄다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곤 해. 들녘이 익어가고, 바람이 높아질수록 세상이 조금 더 조용해지고, 그 안에서 나의 상상은 더 분주해지지. 가을은 참, 무엇이든 꿈꾸기에 좋은 계절이야.


나는 유난히 이 풍성한 가을에 더 많은 미래를 상상하게 돼. 그리고 묘하게도, 우울한 감정을 스스로 찾아가는 때이기도 해. 그 슬픔을 잠깐 안아보듯 즐기기도 하고 말이야.


가을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어. 초등학교 시절 밴드부를 했는데, 우리 학교 운동장 바로 옆에는 은행나무숲이 있었어. 조용하고 고요한 이 숲에서 연습을 하는데, 은행잎비가 후두두 내리는 거야.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어. 살아가면서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다시 보기에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나는 흩날리는 잎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상상했어. 화려하게 펼쳐질 나의 삶들을.


지금 돌이켜보면, 꼭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 오히려 그렇게 쌓여온 소중한 장면들과 이야기들은 나의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되어주었으니까. 삶이 좋은 이유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도.


오늘 나는 사랑하는 다리아와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었어. 다리아는 2014년 신앙을 통해 만난 동생인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림을 좋아하고, 예술적인 감성과 삶을 바라보는 결도 나와 비슷해. 동생이라기보다 친구, 어떤 날엔 나보다 더 성숙한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많아. 무엇보다 웃음 코드가 잘 맞는 고마운 사람이야.


가을은 많은 것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계절이지만, 그보다 더 풍요로운 것은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것 아닐까. 오늘 우리가 나눈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 언젠가는 글로 전해줄 수 있는 날도 오겠지.


*가을의 풍요로움처럼 우리의 삶도 많은 것들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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