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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Apr 26. 2024

옛날엔 선풍기만 갖고도 살았어

난방에는 관대한데 냉방에는 인색한 사고

결혼하고 처음 살게 된 사택은 교회 옥상 위에 얹어진 컨테이너 박스였는데, 내 평생 그렇게 죽도록 덥고 춥고 바선생이 드글거리는 집은 전에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만나기 쉽지 않을 듯하다. 여름에는 찜통 그 자체였고 겨울에는 이불을 덮어도 입김이 났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박스집이라서 여름엔 정말 숨이 콱콱 막히는 더위였는데, 이사 가고 첫 해엔 그 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그리고 성도들은 교회 옥상이니까 아무 때나 올라오셨고, 새로 부임한 부목사 사택이 궁금해서 불쑥 들어오시기도 일쑤였다.

집에 초인종이 따로 없었는데,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고리가 철커덕 철커덕 하며 누가 열려고 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공포란_

두 칸짜리 컨테이너에 한 칸만 우리 집이고 옆칸과는 창문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용하지 않는 빈칸 쪽으로 들어오면 뿌연 창문에 우리 집 불빛이 다 비쳤는데, 집이 잠겨 있으면 그쪽 열린 문으로 들어와서 창문 앞을 기웃기웃 대는 사람의 실루엣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약속 없이 갑자기 만나는 만남을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나로서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에어컨 없이 찜통 속에 있자니 옷차림도 가볍기 그지없었단 말이다. 그래서 처음엔 현관에 긴 커튼을 달았다. 그런데도 굳이 "사모님~ 계세요?"하고 발부터 들이미시는 분들이 꼭 있다. 결국 나는 여름은 물론이고 날씨가 아무리 좋고 바람이 좋은 계절이 와도 현관문을 닫고 살았다. 거기서 사역하는 내내 남편은 점심도 저녁도 나와 함께 먹지 못했고, 나는 그 옥탑방의 찜통 속에서 창문들까지 다 꼭꼭 잠근 채 혼자 찐빵이 되어 갔다.


그때는 우리 남편이 철이 없기도 했고, 담임목사님이 사모님을 홀대하시는 거를 자꾸 보고 배워서(?) 그런 건지, 그 옥탑방 성냥갑에 나만 두고 밤새 스키를 타러 가기도 했다. 혼자 살아본 적 없이 결혼한 난 처음엔 빈 집에서 혼자 자는 게 많이 무서웠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그 조그만 아이가 의지되면서 무섭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강아지를 키우나 보다 싶었다.

험난한 환경에 살다 보니, 작은 개미만 봐도 기겁을 하던 내가 바퀴벌레를 거실슬리퍼로 바로 때려잡는 험악한 여자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고 우울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교회에 가니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옛날에 우린 선풍기만 갖고도 살았어.
요새 사람들은 뭐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 켜지.

(전기세 나오니까 조심하라는 얘기_ 교회 건물이라 교회에서 전기세 부담)



렇군요!

그때는 사람이 안 죽는 더위였었죠. 그게 어디 더윈가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24시간 내내 에어컨을 돌려대도 시원찮을 집에 달랑 선풍기만 갖고 살고 있는데, 얼마나 덥냐 고생한다 소리는 못 할 망정 이게 무슨 염장 터지는 소리란 말인가.

그러는 중에 정수기 코디님이 우리 집에 오시더니

집이 너무 더워 죽겠다며 한 말씀하셨는데, 그때 느낀 가슴의 사이다는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겨울에 보일러 안 틀고 살 수 없잖아요?

겨울에 난방이 당연하면 여름에 냉방도 당연한 거지, 보일러는 가을부터 봄까지 틀어대면서 여름에 한 달 반 에어컨 켜는 건 왜 이렇게 죄짓는 기분으로 해야 돼?



우와, 아이 셋 맘이 되면 저렇게 명쾌해지시는 걸까?

사실 가혹한 환경에 보일러 없이 살게 한 거나 다름없는데, 왜 불합리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나 또한 난방에는 관대한데 냉방에는 인색한 사고에 젖어 있었던 듯하다.


시댁에 에어컨을 바꾸시면서 전에 쓰시던 거를 우리 집에 주셔서 이듬해부터는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올 때, 나의 소중한 에어컨을 놓고 가라고 하셨다. 그게 이 집에 들어올 후임 목사와 교회에 덕이 된다고 하셨다. 어디가 은혜로운 포인트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밀어붙임을 당했다.





#그게 덕이 되잖아

#한국말인데 왜 이해가 안 될까요


#벼룩의 간을 내어먹으실 참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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