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Apr 19. 2024

내가 남편을 남편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집에서 잠옷바람으로 굴러다니는 사람을 깍듯이 존대하는 법


"우리 목사님이~"

지금은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잘하는 말이지만 이 말 한마디도 참 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이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 남편의 사역지로 출석하기 시작했을 때, 다들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시지만 가까이 대해주시지는 않았다. 그 어색함 속에 교회를 오가는 중에 유난히 나를 반갑게 알은체를 해 주시던 목사님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사모!"

아아, 지금 다시 그때 기억을 떠올려봐도 참 반갑게 인사해 주시던 H목사님의 음성과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목사님의 그 알은체가 너무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뒤에 호칭은 좀 빼고 불러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더러 사모라니요. 저는 그냥 로다빈데요. 가 있어야 할 곳은 청년부 같은 느낌에 어색할 뿐인데 거기다 사모님이라니요. 아이구 아이구우우우.


그래도 누가 불러주는 걸 듣는 건 한결 나은 처지였다. 남편이 목사안수를 받고, 성도들과 이야기 중에 남편을 지칭해야 할 경우에는 정말 저어엉말 난감했다. '목사'이라니.. '남편'이라고 불러야 되나,? '오빠'는 좀 아닌 것 같고.

집에서 맨날 잠옷바람으로 굴러다니는 사람인데.. 성도들이야 목사님이 맞지만 나도 목사님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내가 그렇게 부르면 성도님들 보시기에 사람이 겸손해 보이지가 않고 유난이고 웃기다고 생각 들지 않을까? 결혼하자마자 사모놀이에 푹 빠졌나 보다고 우스워하심 어떡하지?

그렇다고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 나만 남편이라고 하면, 오히려 '너만 특별해?' 하는 느낌이 드실까? 머릿속이 맨날 뒤죽박죽 복잡했다.


그러던 중에, 담임사모님을 비롯 부목사모님들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남편목사님에 대한 호칭문제가 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사모님들은 남들과 대화 중에 지칭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남편에게 목사님 이라고 깍듯이 대하는 분, 남편이라고 하시는 분, OO아빠 라고 부르시는 분, 다양했다.

그런데 담임사모님께서, 상황 따라 남편도 괜찮으나 되도록이면 목사님 으로 성도들과 같이 통일하는 게 좋고, OO아빠 만큼은 안된다고 못을 박으셨다.

비슷한 시기, 우리 부부는 부모가 되었고, 시부모님께 남편을 지칭할 때 '오빠가요~' 하기도 그렇고 하 뭐라고 해야 하지? 싶었는데 OO아빠, 혹은 아범 이라는 표현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던 나는, 내적 소용돌이에 또 빠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사모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 지금 목사랑 안 사는 여자 있냐고. 그런 자리에서도 OO아빠, 남편 등의 호칭보다는 목사님으로 쓰라니요.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웬만해선 남편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성도들과 대화 중에도, 교회에서도. 만나지도 말고 부르지도 말자!! 부를 일 자체를 안 만들면 호칭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교회에서 남편을 만나면 남편이 먼저 다가와주지 않으면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는 순식간에 쫑알이가 되는데, 성도들이 계실 때는 부르지 않는다. 할 말이 있으면 카톡을 보낸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냥 그게 몸에 익어버렸다. 심지어 같은 찬양팀에서 섬기고 있는데도 나는 단톡방에서도 예배 때도 목사님께 아무 말도 걸지 않는 유령 같은 팀원으로 머무르고 있다.





#대화는 하는데 절대 부르지는 않아

#이름 부르면 죽는 병에 걸렸나




나는 카톡에 하트만 누르는 지박령이거든


즐겁게 읽으셨다면 하트로 공감을 표현해주세요 :)







이전 23화 언제나 비가 새는 우리 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