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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Mar 01. 2024

목사님이 사모님을 개떡같이 대하시면


나는 어디에 역사하는 영, 흐르는 영, 땅밟기 기도, 솔타이(soul-tie) 같은 말에 해 회의적이다. 그런 개념들은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아무 능력도 없는 허수아비처럼 느껴지게 하기 때문이다. 무슨 영에 묶이고 무슨 영에 묶이고.. 그런 개념은 화답할 수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번에 온전한 승리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사역지를 정하려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 꼭 살펴보는 영적 기류가 있다.

담임목사님이 사모님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그 뉘앙스만큼은 꼭 살펴본다.


면접 시 살펴봐야 할 요소로서

교회가 위치한 도시의 역사나 인프라, 성도들의 분위기, 교회의 규모, 사택의 상태, 복리후생, 맡게 될 사역의 내용과 범위 등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하다. 이제부터 말하게 되는 내용은 내가 지금껏 여러 사역지를 겪어오면서 그냥 몸으로 체득한 잔기술 같은 거라 여겨주시면 좋겠다.

희한하게도, 목사님이 사모님을 갈빗대처럼 아끼고 사랑하시면 부목사들도 자기 아내를 애지중지한다. 반대로 목사님이 사모님을 개떡같이 여기고 무시하시고 막 대하시면 원래 안 그러던 부목사들도 자기 아내를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다른 사모님들도 그렇다고 공감을 많이 해주신 부분이라서 더 신기하다.


우리 남편은 원래 참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했지. 이 사람의 다정하고 푹신한 면에 이끌려, '사모로 사는 것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 오빠랑은 어디 심심산천 산간벽지 오지마을에서도 흙으로 벽돌 빚어 집 지어서도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나의 예민함이, 이 오빠랑 있으면 푸근해지는 것 같았고, 나의 우울함이, 오빠랑 얘기하다 보면 별일 아니네 싶고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호기롭게 결혼했건만....


사모님이 집안도 학력도 심지어 인물까지 훨씬 더 좋으신데 사모님의 꿈과 은사를 무시하시고 그저 자기 뒷바라지나 하고 그림자처럼 있으라고 하시는 목사님 교회에서 부목사로 한참을 지내니 이상하게 이 자상한 오빠가 썩을놈이 되어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공감을 해주질 않고, 내가 T고 자긴 F인데 오히려 자기가 번번이 찐 T처럼 굴질 않나, 버럭 버럭 하질 않나. 참 나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4년을 꼬박 버티다 더 이상은 못 살겠어서 헤어지자 했더니 나랑 별 상의도 없이 사역지를 옮겼다? 자기 혼자 면접도 몇 차례 보러 다녀오고, 이사가 결정되고 입주 직전에 한 번 새로 가게 될 집에 가서 둘러보고 바로 보름쯤 후에 이사를 하게 됐다. 그 무렵의 나는, 아니 같이 살 터전을 왜 당신 맘대로 하느냐, 난 지금도 친정이랑 충분히 멀어졌는데 시골이라니, 읍 면  라니!! 그런 깡시골은 싫다 등의 몇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그래, 그 어디든 여기보다야 못하겠나' 싶어 내버려 두었다. 이혼도 결심한 마당에 깡시골 한번 살아보지 뭐.

(여차직 하면 당신을 시골에 버려두고 나만 기차 타고 홀연히 친정으로 텨텨 하고 말 테다)


사실 개떡은 정말 맛있다. 꿀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그런데 새로 간 사역지 담임목사님이 사모님만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시는 거다 (마 그 정도로 미인이신 것 같지는 않은데). 사모님 역시도 목사님을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과 존경이 듬뿍, 설교 때 앞에서 회중을 찍는 모니터(출석인원체크용이라서 예배영상에 송출되지 않기 때문에 표정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에 매주 사모님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남편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프러포즈 때도 사 오지 않던 꽃을 다 사 오는 등 잔망을 부리곤 했다.

(평생 받을 꽃을 그때 다 받아본 것 같다.

  그러니까 가끔씩  사 오라고, 자기야)




사모님이 본인의 은사대로 달란트를 활용하며 지내고 계시는지, 목사님과 사이가 좋으신지 하는 건 표정, 분위기 같은 걸 보면 느껴진다. 면접 자리에서 그런 체만 하신다고 다 꾸며지지가 않는다. 두 분 사이의 기류 즉 뉘앙스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산 부부의 티키타카는 꾸민다 하더라도 불쑥불쑥 찐텐이 나오게 마련이다. 부모님들이 상견례 자리에서 딱 두세 시간만 이렇게 라고 해도 고걸 못 참으시지 않던가.

물론, 나까지 참석하는 면접단계까지 진행되었다면, 내가 이제 와서 거기 별로야 가지 말자 한다고 해서 청빙이 무산될 일이 거의 없긴 하다. 그럼에도 내가 그 점을 예의주시 하는 건,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하려고 ㅋㅋ



사랑받는 사모님이 계시던 교회에서 우리 부부는 잃었던 첫사랑을 천천히 회복했고, 은사대로 화끈하게 쓰임 받는 사모님이 계시던 교회에서는 늘 숨어만 다니던 나도 내 은사대로 섬김의 자리에 나아갔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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