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새끼손가락 걸어 최선을 다짐하며
사랑하는 당신,
오늘 이 가을은 당신에게 어떤 날이 될까요.? 부디 작은 수확이라도 거두어 조금이라도 마음 호젓이 깊은 가을을 느낄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원치 않는 갑작스고 거듭되는 가난한 날들에 미처 생각 올리지도 못한 남편의 암판정에 마음 무너지는 시간을 견디어 걷고 계신 당신. 그 발걸음이 어떤 사연 끝에서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엊그제는 사실 마음 무거운 날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처음 사랑을 확인했던 그 시절, 함께 나누어 항상 끼고 다니던 반지를 처분하였지요. 힘겨움이 극치이던 작년 이맘때 숙소에서 쫓겨나 길거리에서 풍찬노숙의 기로에서 당신은 이 작은 반지들이라도 전당 잡아 당장의 급한 것을 마련하자 선뜻 손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 손을 어루 잡아 몇 달만 기다려 주면 반드시 되찾아 와 당신 손가락에 껴 주겠다는 말은 결국 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지를 나눈다는 의미는 예로부터 영원성에 대한 약속이라 하더군요. 사실 고대부터 중세시대 까지 장검을 휘두르던 병사나 기사들이 칼을 더 오랫동안 부여잡거나, 상대방과 육탄전을 할 때 깍지를 강건히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반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유래가 더 와닿을지 모르지만, 반지는 나누어 낀 두 사람을 힘과 에너지로 묶어내는 징표이자 수단이 됩니다.
당신과 나눈 반지는 <어벤저스>의 타나토스가 손가락을 튕겨 에너지를 모아내는 근원이었고,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 그토록 탐내던 절대 힘을 유지해 주던 주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손가락에 자리 자국 남은 허전함에 우울했습니다. 당신은 더한 마음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당신은 그저 새끼손가락 내밀어 걸어 달라고 하더군요. 다음에 우리 사연들이, 사정들이 다 풀려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날에 반지 하나 사서 나누자고 말입니다. 참 고마운 당신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아 내기로 다짐에 결심을 더해 봅니다.
최선을 다 하고도
어쩔 수 없을 땐,
그냥 버텨내는 거야
길이 보일 때까지
- 글/사진 박노해
'최선'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지난 청춘과 사회 전성기에 나는 내가 소임 한 일, 즉 생업에 100%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못했다'가 아닌 '않았다'라는 말이 고백의 중심입니다.
스스로 파산한 가계를 짊어진다는 자기중심의 피해의식과 새롭게 만든 가정의 울타리에 대한 과잉 강박이 내 여력과 에너지를 분산시켰습니다. 거기에 잘난 사람들 천지의 직장과 업무 환경에서 늘 자격지심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차오르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번민으로 실천과 실행보다 푸념과 한탄으로 시간을 잡아먹고, 정작 가장 중요한 '업'에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는 인생의 단골손님이 아니던가요.
극도로 곤궁하고 극단으로 피폐해진 삶의 벼랑 끝에서, 나는 '최선'을 다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치열하고 진지한 시간을 버팁니다. 이제 길이 보일 때까지 버틸 힘을 간구하여 기도합니다. 그동안 엄하고 두려움의 하느님이 다그쳤다면, 이제 자애롭고 사랑이신 하느님이 곁을 주길 기도해 봅니다.
사랑하는 당신,
금값이 올라 전매를 하고 밀린 방세를 해결하여 다행이라는 당신의 미소가 맘에 아려 옵니다. 새끼손가락 걸고 영원하자던 약속을 다시 새로이 건넵니다. 텅 빈 반지자리에 그 약속을 새겨 말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보려 합니다. 손가락마다 우리 인내의 결실들로 반짝이는 보석이 열리게 되길 노력합니다.
참 고맙고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