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L Jun 12. 2023

외국인이 작은 동네에서 일을 구한다는 건 3

30살에 독일 초밥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기

그래서 나를 메인 셰프로 키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나를 키우려고 했던 거구나

나는 일을 하기 전부터, 학업 때문에 독일에 왔다고 얘기했는데 그 말은 잘 전달이 되지 않았나 보다.

식사 시간에 스몰톡이라도 하면서 조금 친분을 쌓으려고 했지만 다시 일터로 나가는 Mr. Vihn의 태도는 바뀌었다.



<작은 일에도 배울 점을 찾아보자>


초밥에 들어가는 밥알 갯수를 알 만큼 장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모양있게 초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손도 빨라져서 세트메뉴같이 큰 박스도 뚝딱 만들었다. 가끔 내가 만들어 놓고도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뒀다.

내가 만든 초밥들. 스시 폼 미쳤다.

일이 힘들기 때문에 현타도 많이 왔다. 고향과 수백키로 떨어진 곳에 와서 이 작은 마을의 마트에 있는 스시가게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에서 쌓아온 스팩은 무엇이고, 스시를 만드는 일은 내가 50살이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일을 즐겁게 해보려고 했다. 예를들어 오늘 스시를 정말 예쁘게 만들어 보겠다던가, 아직 완벽하게 손질하지 못하는 연어를 오늘은 잘 손질해봐야지라는 등의 목표를 부여했다. 퇴근해서도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느낌으로 평소 좋아하던 게임도 살짝씩 했다. 다음날 출근하려면 9시에는 침대에 누워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힘든 건 정신적인 스트레스다. 다른 사람과 일 해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인간관계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온다.


"Nicht gut! schnell!"

Mr.Vihn 아저씨의 잔소리와 무례함에 예쁜 초밥을 만들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는 계속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어로 욕해버린 건에 대하여>


Vihn 아저씨는 정말이지 하나라도 잘 못하면 그때부터 무한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를 하는 만큼 시간내에 만들어야 되는 스시를 못 만들기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회사의 규칙이 있고 이 매장의 전통이 있다면 그거대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소한 잔소리는 업무의 효율을 떨어트리니까 짜증이 났던 것이다.

바코드 라벨의 스티커를 1초내에 때어내지 못하면 느리다고 면박을 주고, 얼굴 표정이 안좋으면 "여자친구랑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성희롱까지 했다. 같이 일하는 중국여자애도 본인을 자꾸 은근슬쩍 만진다고 했다. 정말이지 몹쓸 인간이였다.

설거지를 하면서 뒷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Vihn아저씨가 집기류를 거의 던지다 싶이 주는 것이다. 우당탕 소리가 계속해서 났고, 큰 소리가 나서 지나가면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집기류들을 곱게 주는법이 없어서 쉬는시간에 얘기를 했다. 신입이 와서 많이 답답하겠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대답은 본인이 화를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럼 그걸 받아주는 직장 동료들은?ㅡㅡ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으로 욕하면서 그냥 넘겼지만 선을 넘는 일이 생겼다.

스시매장 특성 상 칼이 굉장히 날카롭다. 사시미(회칼)기 때문에 일할 때 끼는 장갑도 종이 마냥 배인다. 그걸 집기류랑 같이 던지다시피 주는 것이다. 잘 못하면 찔릴뻔 했다. 그때부터는 나도 참지 않았던 것 같다. Mr.vihn아저씨의 눈을 보면서 "아니 이걸 이런식으로 주면 ㅅㅂ !!" 이라고


한국어로 얘기했다.



<눈물 젖은 햄버거. 드셔보셨습니까!>


부정적인 얘기를 계속 들으면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외국어가 안되니 답답하면 한국어로 욕이라도 해버리는 나는 멘탈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바라고 책임감이 조금 없어도 된다는 마인드도 없고, 오히려 회사다닐 때 만큼 열심히 했는데도 Vihn 아저씨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하니 좋게 출근할 수가 없었다. Vihn 아저씨가 나쁜소리를 할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6개월은 하자. 계속해서 다짐했기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어기기가 싫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주6일을 새벽 6시까지 출근하고 오후에는 헬스장에가서 운동까지 하니 여유가 너무 없었나 싶다.

하루가 고되고 힘들어서 저녁을 만들어 먹을 힘도 없어서 햄버거를 샀다. 집에서 햄버거를 먹는데 목이 턱턱 막히면서 울음이 났다. 빵과 패티는 두꺼운 종이를 씹는 느낌으로 바뀌었고 맛은 나지 않았다. P양이 볼까봐 부엌에서 문을 닫고 흐느꼈다. 내가 많이 초라해지고 약해진 것이다.

어둡고 칙칙한 독일 겨울 출근 길


<한마리 양의 걸음으로>


하루는 너무 무력감이 들었고, 깊은 우울감에 잠겼다. 우리집 앞에는 헤르더 교회가 있는데 문이 활짝 열려있는 걸 보고는 그냥 들어갔다. 종교도 없는 나는 무엇때문인지 그냥 예배 소리가 듣고 싶었고, 거룩한 목사의 독일어 소리는 무슨말인지 모르지만 마음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건물관리인 분께서 나에게 성경을 주셨다. 성경 표지에 있는 Glaube, Leben. 믿음과 삶이였다.

헤르더 교회에서 받았던 성경

인간은 모두 길잃은 양이다. 양은 길눈이 어두워 목자(이끌어 주는 사람)가 필요하다. 직업의 귀천과 성패가 길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 세상에 왔고,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다음 날 조금의 미소와 여유를 되찾고 출근했다.

Vihn 아저씨가 뭐라고 하던말던 나는 잘 하고 있다라는 믿음과 함께.

이전 09화 외국인이 작은 동네에서 일을 구한다는 건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