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L Jun 12. 2023

외국인이 작은 동네에서 일을 구한다는 건 2

30살에 독일 초밥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기

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베트남 아저씨들. 나는 고맙고 미안해서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 괜찮다는 베트남 아저씨들 말 안에는 조금 다른 마음들이 있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새벽 6시 출근 7일 차>


새벽 출근. 엄청 밝았던 달.

독일의 겨울은 무척이나 춥고 어둡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한국에서 가져온 롱패딩을 두른 뒤에 차가운 팔뚝을 쓸어 만지며 아침을 꾸역꾸역 먹는다.

동이 트지 않은 독일 소도시의 젖은 돌바닥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15분 남짓 가야 하기 때문에 커피도 꼭 챙겨 먹는다.

하루는 눈이 오지도 않았는데 돌바닥에 내린 이슬이 얼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진 적도 있다. 자전거를 새워두고 걸어가다가도 넘어진 적이 있다. 새벽 일찍 마주치는 사람들은 펭귄처럼 양팔을 벌리고 서로 조금씩 부끄러워하면서 출근하고 있었다.

배움, 취미, 그리고 돈 버는 일 있으면 하루가 밸런스 있게 잡힌다고 생각해서 호기롭게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라곤 하지만.. 새벽출근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몸도 이렇게 힘든데 사실 정말로 힘든 건, 같이 일하는 베트남 아저씨 Mr. Vihn였다.



<Nicht gut! Schnell!>


Nicht gut! 좋지 않아!

출근을 해서도 하루에 30번 이상은 들은 소리다. 스시매장은 크게 식재료준비, 요리, 뒷정리 이렇게 나뉘었는데 오전출근은 식재료 준비와 요리 담당이다. 아보카도를 준비하는데, 칼질이 서툰 나는 좀 더 빨리하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Schnell! Schnell!! (빨리! 더 빨리!!) 당연히 나보다 일을 많이 한 사람 입장으로서 답답할 수는 있지만 이제 겨우 1주일 밖에 안된 나에게 조금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았다.


100개가 넘는데 1주일 만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특히나 스시를 만들어야 하는 달성 유로가 있는데 이걸 모두 소화하려면 50개가 넘는 메뉴를 모두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vegetarisch(채식)스시를 만들었다. 오이와 아보카도 스시를 각각 2개씩 만들고 8 등분해서 각각 담고 나머지는 믹스해서 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한번 보여주고서는 하라고 하니 헷갈렸다. 그리고 메뉴도 너무 다양하다. 오이, 아보카도, 두부, 파프리카 등등 만드는 종류가 수가지가 있고, 거기에 토핑의 종류도 3가지 이상이 되니까 매장에 출근해서는 도저히 집중해서 외울 수가 없었다.

퇴근 후에 혼자 암기하려고 공부했던 흔적들

그래서 퇴근하고 나서 스시매뉴를 보면서 무엇이 들어가야 되는지 공부했다. 심지어 잠이 올까 봐 도서관에 가서 메뉴 암기를 했는데, 조금 현타가 왔다.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독일어 공부를 해도 모자를 시간에
내 커리어도 아닌 스시 메뉴를 위해서
도서관에 와서 뭐 하는 거냐고..


한국 회사에서 일할 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직도 많이 자리 잡고 있던 게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 것이다. 

주는 만큼만 일 하자. 어차피 이곳에 내가 평생 있을 것도 아닌데. 회사는 날 신경 써주지 않아. 

이런 생각들을 해보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해야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들의 사정>


출근 2주 차, Veggy(채소)와 Lachs(연어)를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메뉴를 외웠다.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오전 9시까지 3시간 동안 식재료 준비와 400유로 이상의 스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정도면 베트남 아저씨들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그들이 원하는 기준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 했다. 하지만 Mr.Vihn 아저씨는 여전히 Nicht gut! Schnell! 을 외치면서 면박을 줬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빨리 만들라는 거야?


물론 베트남 아저씨들은 예쁘게 스시를 만들고, 빨리 만들 줄 안다. 하지만 겨우 2주밖에 안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정을 들어보기 전이니까.

2시간 동안 만든 스시

독일은 노동자의 휴식시간이 잘 지켜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 하면서 쉬는 시간은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베트남 아저씨들과 빵이랑 샐러드를 먹으면서 이것저것 어필하려고 했다. 

"나 아직 2주밖에 안 돼서 잘하지는 못해도, 집에서 메뉴도 공부하고 외우고 있다."

"아저씨들은 몇 년 일 했어? 나 일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 정도면 잘하고 있지 않아?"


그들은 2년 동안 일 했고, 사실 이 동네가 집이 아니고 출장 나와 있는 것이었다. 이 매장에 메인 셰프를 키우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메인 셰프로 키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나를 키우려고 했던 거구나

나는 일을 하기 전부터, 학업 때문에 독일에 왔다고 얘기했는데 그 말은 잘 전달이 되지 않았나 보다.

식사 시간에 스몰톡이라도 하면서 조금 친분을 쌓으려고 했지만 다시 일터로 나가는 Mr. Vihn의 태도는 바뀌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